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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Mar 31. 2024

02. 도대체 무어라고 말하는 거니?


출산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생아실에 아이를 보내고 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출산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검사 등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로부터 건네받았다. 산후조리원 및 산후조리사 연락 등 아내가 챙겨준 출산 직후 액션 아이템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가 얼떨결에 받은 종이에는 출산과 동시에 진행되는 검사 및 갖가지 의료 절차들이 적혀있었다.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는 선별검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몇 시간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정신이 없었지만  눈에 띄는 병이 있었는데 바로 갑상선 기능저하증이었다. 갑상선 관련 수술을 출산 이전에 경험했던 지라, 이 병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 외  아미노산 대사 이상 정도인데,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칸에는 발병 확률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게 굉장히 충격이었다. 생각보다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로또처럼 800만 분의 일이 라면 차라리 감사할 수준이었다. 정확한 수치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정도면 살면서 주위에서 한 번 보고도 남짓한, 익숙한 수준의 확률이었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아이를 잘 낳기만 하자라는 생각만 있을 뿐, 다른 생각은 없었는데, 처음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점에 가서야 왜 부모님이 자식에게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하는지 너무 이해되었다. 건강하는 것 자체도 사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입장에서 지금 생각해 보니 이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몸은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세포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세포들이 모여서 거대한 사람이라는 조합으로 생명을 이어나가는데, 정말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건강한 것일 뿐, 이상한 일이 생겨도 그것은 일어 남직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스무 살 정도까지 키우고 독립시키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이야기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때까지 키워주고 성인이 되었는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다소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쯤이면 이제 다시 아이가 없던 삶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출산하고, 이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니 그제야 내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를 알게 되었다. 생각의 범위는 너무 좁았고 나는 무지하였다. 이제 숨을 멈출 때까지 나는 아이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된 것이다. 아니 걱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니까 말이다.


그때부터 아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두꺼운 책을 열심히 읽던 아내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늦은 시작이었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아이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유튜브에서 영상을 훑어보기도 하였다. 아이의 월령에 맞는 발육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훑어보면서 아이를 관찰하곤 하였다.  다행히 아이는 남들보다 조금씩은 빠르게 성장하였던 것 같다. 뒤집기를 할 때도 그렇고 걷기를 할 때도 그랬다. 이게 얼마나 안도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향한 기쁨의 박수 뒤에는 항상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외에도 신체적인 발육은 굉장히 잘 발달하게 되면서 돌 전후부터는 걷는 것도 잘하게 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된다, 돌잔치에서는 어른들 주위를 돌아다니는 애교까지 부릴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아이가  “아빠”, “엄마” 등의 말(!)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남아는 여아보다 다소 어릴 수 있으니 기다릴 필요가 있으며 18개월까지는 유연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등, 다양한 정보를 선행학습 이후에 이제 아빠를 향한 진짜 “아빠” 말을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는 것과 울기만 하던 아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곰과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하는 소리였다. 무언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굉장히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아이가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마냥 시끄러운, 의미를 알 수 없는 소음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아이의 소리는 시끄러울 정도로 비규칙적이었고 돌발적인 경우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부터 시작해서 육아 관련 도서까지 열심히 섭렵해 본 결과, 이렇게 소리를 내는 방식부터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그 소리가 음절이 되고, 다시 단어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지금 이렇게 내가 성인으로서 말을 유창하게 하기까지는 굉장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록 내 기억에는 처음부터 말을 어느 정도 했던 것만 남아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유학을 위해서 GRE를 공부하였던 적이 기억났다. GRE의 언어영역에서는 논문의 내용을 발췌해서 지문으로 활용한다. 굉장히 다양한 학문의 논문이 나오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학문의 지문(예: 도시박쥐의 일생)이 나오면 그렇게 지루할 수 없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시험공부를 하던 중 아이의 성장에 대한 논문이 지문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하였다.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아이는 이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유튜브로 굉장히 많은 단편적인 정보를 취득하기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정말 많은 아이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기도 하고, 중심을 못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부모인 나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마냥 관찰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마냥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이 뭔가 의무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의무가 아닌 아이를 위한 노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아이를 보면서 뭔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이제 비로소 아이에 대해서 애정이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찾아보니, 내가 해야 할 액션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뿐이었다. 아이의 성장시점에 적합한 말을 아이에게 짧게 해 주되, 자주 노출시켜 주고 아이가 말하려는 의지를 갖도록 아이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들에 대해서 한 박자 씩 늦게 해주는 것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해졌으니, 아빠로서 이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아빠로서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첫 번째 단어는 “아빠”로 정해서 하루 100번 이상 들려주기를 결정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내는 이때 나를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였다.


정말 공대생 IT 개발자 아니랄까 봐, 100번을 세면서 매일 틈만 나면 한 것이다.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 내내 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에게 말하였다 “노는 거 재미있지? 아빠 해봐!”, “밥 맛있지? 아빠 해봐”라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열심히 하였다. 나에게도 뭔가 진도를 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이가 변하였을까? 아니었다. 이따금 “압~~ 퐈”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나를 보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 아이는 “아빠”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었기에(!) 비슷한 소리를 낸 것이었다. 나의 단순하지만 아이를 향한 첫 번째 노력이 이렇게 아쉽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하나의 소리가 아닌, 단어를 비슷하게 이어서 말한다는 것이 어찌나 기뻤는지 나의 양쪽 입꼬리가 주욱 올라가는 것을 아내가 발견하였고, 나도 나중에 찍힌 나와 아이의 사진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제는 아이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나의 아빠 100번 사건은 꽤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아직은 아빠 소리를 듣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이와 이전보다는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사진 대신 영상도 함께 찍는 횟수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뭐랄까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나면 사진을 정말 많이 찍는구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때쯤 되니 부모님 영상을 그렇게 찍고 싶어졌다. 아니 적어도 목소리라도 말이다. 그래서 주말에 부모님 만난 김에 목소리를 그냥 녹음하였다. 뭔가 작위적인 느낌이 아닌, 그냥 대화하는 목소리를 녹음하였다. 이렇게 나도 부모가 되는구나 싶었다. 그렇다. 그렇게 나도 아빠가 되어가는 것 같았던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지금 흐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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