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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Mar 24. 2024

01. 어린이집 첫 방문

24년 3월 4일, 마침내 그날이 왔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가장 멀리 부모와 떨어지게 되는 첫 번째 시간, 어린이집의 등원이 일어난 역사적인 날이었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말이다.


사실 어린이집 등원에 대해서는 크게 어떤 생각을 해보질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 아내는 부모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빴던 것 같다. 나는 점점 바빠지는 회사생활에 밀려 일에 치여 살고 있었고, 아내는 재취업 준비로 인해서 거의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던 상황이었다. 잠깐 시간이 났을 때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은 하였지만,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내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육아휴직을 쓰기로 결정하였고  맞춰서 아내도 취업이 결정되게 되면서 본격 나의 육아생활이 시작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왕왕 아내를 돕고 퇴근 이후에는 아이를 씻기고  방청소를 하는 등,  육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 왔지만, 아내의 육아업무에 비하면 너무 적었던 터라, 장장 일 12시간에 달하는 육아는 나에게 굉장히 큰 도전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그렇게 3월 4일은 정말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최근 들어 늦게 자기 시작한 아이는 7시 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훑던 아이를 데리고 바로 아침부터 먹이기 시작하였다. 최근 들어 아이는 본인이 직접 먹으려고 하거나, 밥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그날은 투정 없이 밥을 잘 먹어주었다. 계획형 인간인 우리 두 부분에게 있어서, 아침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제 때 밥을 먹을 것인가였는데 이 부분은 잘 패스하였다.


중간에 아이가 배고플지 모르니 아이가 먹을 우유와 간식, 그리고 물과 기저귀 등을 챙겨서 가방에 넣고 난 뒤 8시 40분쯤 시간이 되자 아이에게 외투를 입히고 양말을 신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유모차에 태우고집 밖을 나섰다. 아내는 나와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잘 다녀와”라고 말해주었다. 이때 느낌은 비로소 나 역시도  홀로서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결혼을 한 직후 홀로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때 공항에서 아내의 인사를 받으면서 터미널로 들어갔던 경험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다. 마치 그 느낌이었다. 아내의 지도 아래 보조를 맞추면서 그간 내가 아이를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어린이집으로 가는 10분은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자주 산책을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들어서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지부터 상상하던 나에게는 이 시간은 굉장히 길면서 짧았다. 예상한 계획(?)대로 흘러갈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면주시를 하면서 가야 하니 앞을 열심히 보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가면서 어린이집에 도착하였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반에 해당하는 번호를 누르고 호출을 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와 부모의 얼굴을 확인한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신다. 나름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하였는데, 나보다 더 일찍 온 부모님들이 눈에 보였다. 알고 보니 첫 주는, 아이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40분가량 가량 보내는 기간이었기에, 부모님들은 아이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온 것이었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아이 셋과 학부모 셋, 그리고 선생님 셋이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되었다. 여기서 성인 중 남성은 나 혼자였다. 우선 구석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앉았다. 선생님들이 우선 밝고 큰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해 주시는데, 이 작은 공간에서 인사를 어떻게 크게 해야 하나부터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문장으로 얼떨결에 인사를 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서 점차 아이가 내 품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이제 학부모들과 안면을 트기 시작하였다. 정말 안면만 텄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고민해 본 적이 없던 터였다. 그리고 그중  학부모 한 분이 이번 아이가 둘째라고 하셨는데, 둘째여서 그런지 굉장히 익숙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하였다. 아이 간에 인사를 하도록 돕기도 하고, 본인의 아이 외에 다른 아이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거나 호명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비대면업무가 어느덧 2년이 되어 사람을 보는 것 자체도 선택이 되어가고, 인사 역시 업무 용건 외에는 ”안녕하세요 “가 다였던 나에게 이 상황은 굉장히 낯설었다. 힘들기보다는 통제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하면 되는 상황인데 그 “자연스러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낯선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정신이 혼미해지니 다행히 시간은 금방 흘러버렸고,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아이와 놀았던 내용에 간략히 선생님에게서 듣고, 알림장 등을 받아 챙기는 과정도 너무 오랜만의 경험이라 모든 게 얼떨떨했던 아빠의 어린이집 첫날 등원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팀 리더로서 누군가를 책임져본다는 경험 해보았지만, 그것을 넘어 정말 한 명의 아직은 대화가 쉽지 않은 내 아이를 책임지고 사회경험을 시킨다는 것, 그 경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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