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이 3개월 차에 돌입하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정말 훌륭하게 적응하였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4시까지 나름대로 풀타임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 하루에도 약간의 여유가 시작되었다. 간절히 이 여유를 시간을 기다렸던 아내는 3월에 취업하게 되면서 내가 오롯이 이 경험을 가져가게 되었다.
하지만 등원 이후 아이가 감기나 노로바이러스 등 다양한 이유로 아프게 되면서 이 여유시간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은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했다.
이 시간을 제대로 못 쓸 경우 아빠의 하루는 남아있을지언정, 나의 하루는 그냥 날아가버렸다. 아이와 놀다 보면 몸과 정신이 모두 아이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가 다른 짓을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대해서 철저히 계획을 세워야 했다.
평소에 일을 할 때도 항상 계획을 어느 정도는 세워서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자연스러운 행보였던 것 같다. 아이가 풀타임을 띈 첫날, 나는 아이를 등원시킨 후 바로 책상에 앉아서 계획을 시작하였다. 뭐랄까 이때 가슴이 좀 뛰었다. 그간 일을 하지 않는 낯선 상황에서 오는 불안함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아 종종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러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아이가 풀타임에 가깝게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던 즈음, 등원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뛰어와 책상 앞에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회사에서 한 때 수요예측을 담당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때 경험이 꽤나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선 일정은 크게 주간단위로 관리하기로 하였다. 주간을 평일과 휴일로 나눠볼 수도 있었지만, 우선 평일만 고려하였다. 휴일은 평일대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서 자유시간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일은 등원과 하원으로 나누기로 하였다. 등원과 하원 직전의 업무들은 어느 정도는 유동성을 띄고 있어야 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하였다. 계획을 짤 때는 그래도 아이가 규칙적으로 6시 30분 전후로 일어나기도 해서 그 시간보다는 일찍 잡았다. 나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아이를 챙기다 보면 아침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내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명상 또는 묵상을 마음을 침착하게 내려놓는데 집중한다.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을 선정한다. 휴직 전 대비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 때는 안 해야 할 일을 목록에서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신문을 약 15분가량 읽으면서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다. 아이 옆에서는 전자기기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신문을 구독하고 보기로 하였다.
헤드라인 위주로 신문을 대략 거의 훑다 보면, 아이가 깰 시간이 된다. 아이가 아주 드물게 늦잠을 자서 깨울 때가 있지만, 대개 시간이 되면 스스로 일어난다. 아이는 일어나서 주위를 몇 번 두리번대다가 침대 밖으로 나와 엄마, 아빠를 찾기 시작한다.
계획 없이 하루를 살 때는, 아이가 일어날 때 나도 함께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에 굉장히 괴로웠다. 하루에 대한 준비 없이 강제로 기상을 당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불쾌하고 이러한 기분이 아이에게도 전염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침에 준비를 하고 일어나면 아이에게 웃어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그렇게 아이방으로 들어가서 아침인사를 하면 아이의 아침이 시작된다. 아이를 번쩍 안아서 잘 잤는지 물어봐준다. 그리고 거실로 데리고 와서 기저귀를 갈아준다. 새 기저귀의 뽀송함을 만끽한 아이는 어디서 체력이 이렇게 솟아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졸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졸거나 눕는 순간 아이의 울음은 시작된다. 아이가 울면 출근을 해야 하는 아내가 깨어난다. 이 연쇄작용은 막아야 한다. 이전에는 그냥 울었는데 요즈음은 내 머리를 쥐어뜯거나 안방 앞에 가서 운다. 아이가 머리를 쓰는 느낌이다.
그렇게 조금만 버티면 드디어 아이의 아침 시간이 된다. 이때 빠르게 하이체어에 아이를 앉히고 냉장고에서는 밥을, 식기세척기에서 물병을 꺼내야 한다. 여기서 망설임이 있으면 안 된다. 냉장고를 연사이 아이는 그 안에 있는 유산균이나 치즈를 포착하고 달라고 할 수 있다. 막아야 한다. 밥을 빠르게 덥히고 아이의 턱받이를 세팅하고 나면 이제 밥을 먹을 수 있다.
종종 아이가 밥을 뱉는 경우가 있다. 이때 반응하면 안 된다. 아이는 반응하면 그다음부터 같은 행동을 한다. 최근에는 밥을 멀리 뱉는 것을 시도했는데 이때 한번 쳐다보고 손으로 음식을 받아주니, 아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후에 비슷한 행동을 하면 모른 체를 하였다. 자연스레 아이는 음식 뱉기를 멈췄다. 아내가 잘 만들어준 음식을 아이가 뱉는 것은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좋지 않은 터라 빨리 정리하기 위해 알게 된 대응패턴이었다.
대신에 아이가 먹을 때는 많이 웃어준다. 먹는 것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를 위해서 해주는 것이다. 이 것도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몸에 밴 습관이 아닌가 싶다.
식사가 끝난 이후에는 식기세척기로 가서 접시나 숟가락 등 식기들을 제자리에 놓고 어린이집에 가져가야 하는 식판이나 수저 등을 챙긴다. 이 때도 속도가 생명이다. 하이체어에 홀로 놓인 아이의 참을성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이제 아이를 하이체어에서 꺼내서 화장실로 간다. 세수를 한다. 세수를 시키면서도 틈틈이 “앞에 봐” 등의 말을 걸면서 아이와 교감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아이가 아침응가를 할 때가 된다. 그래서 씻기고 나서 바로 응가를 치울 준비도 한다.
그리고 내려놓고 아이의 기저귀를 벗긴 다음 응가를 바로 처리한다. 그리고 아이를 잠시 놀도록 내려둔다. 이때쯤 아내가 깨어난다.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아이 로션을 살짝 짜서 아이의 얼굴에 발라주면 엄마는 얼굴까지 반질반질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이후에 나는 이때 주로 스트레칭을 하는 편이다. 처음에 아이는 아빠의 스트레치를 보고 굉장히 신기하게 보았지만 지금은 운동하는 나의 몸에 올라타기도 하고 자세를 흉내 내면서 같이 보낸다. 얼마 전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앞에서 팔 굽혀 펴기 동작을 하면서 재롱을 떨었는데, 이때 나에게 배운 동작이어서 내심 뿌듯하였다.
그렇게 놀아주다가 8시 즈음이 되면 우유를 준비해서 우유를 입에 물어준다. 그리고 양말을 신기고 바지를 입힌다. 이렇게 하면 8시 30분이 된다. 아이는 이제 등교할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엄마와 함께 보내면 나의 등원루틴은 마무리가 된다.
이에 비해서 하원은 조금 여유롭다. 다른 것보다 우선 내가 상대적으로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이다. 오후 3시 30분쯤이 되면 나는 우유를 덥혀서 준비한다. 이 우유를 들고 어린이집 위층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하원길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반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타이피로 일을 처리한 후 어린이집에 간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유모차에 앉힐 때 우유를 바로 준다. 그리고 이때 아이의 기저귀 상태를 꼭 본다. 기저귀가 그리 차있지 않다면 우유를 먹이면서 바로 아파트 근처에 있는 사회복지관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아이는 우유를 마시게 한다. 집에 있으면 집중력이 산만해져서 우유를 잘 안 마시는데 이렇게 하면 잘 마신다.
사회복지관은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고 아이가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다. 그래서 아이를 실내에서 신나게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신문을 빠르게 읽으면서 외부 동향을 파악한다. 신문을 보면 정말 세상의 시계는 나와 다르게, 그리고 나와 무관하게 움직임을 느끼기에 이 시간은 나에게 필수적인 시간으로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이때 가끔 마시는 아샷추는 정말 맛있다.
약 20분간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간다. 아이에게는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이때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트램펄린도 하면서 1시간가량 보낸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허리를 숙여 아이와 같은 위치에서 움직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치지 않도록 집중해서 아이를 따라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때가 꽤 즐겁다. 나의 동작 하나하나에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 있는 출렁다리가 있다고 하면 나는 출렁다리의 반대편까지 한달음에 뛰어서 넘어가서 아이를 기다린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아이가 그렇게 크게 웃는다. 이해가 안 되지만 꽤나 기분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이제 천천히 나를 따라온다. 그리고 성공하면 신나게 웃으며 뛴다. 이러한 놀이를 서너 번 반복하면 한 시간은 금방 간다. 여기까지 했는데 아이가 피곤해하지 않을 경우 집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시작한다. 물놀이까지 하면 이어서 샤워를 한다. 이렇게 하면 밥 먹을 시간이 순식간에 다가온다.
이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아이는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기준이 명확해지기 시작하였다. 즉 어른의 방식대로 밥과 반찬을 꼭 줄 필요는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주되 밥 위에 잘 올려서 밥을 숨긴 채로 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옥신각신 속에 시간만 간다. 그리고 밥을 먹은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밥을 더 이상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아이는 저녁밥을 남김없이 먹었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대망의 육아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여기까지 30분 정도의 실랑이 끝에 재우고 나면 드디어 육퇴를 하게 되고 나의 시간이 오게 된다. 한 두어 시간의 자유 속에 그간 해야 했던 일을 속사포로 마무리하고 나면 오후 열 시 반, 잠을 청하고 이렇게 하루는 마무리된다. 주말은 여기에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포함될 뿐이다.
이렇게 육아휴직 기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또 하나의 회사에서 엄청 높은 분을 모시고 사는 느낌이다. 아내에게는 장난 삼아, 여기 우리 아기는 대통령도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고 말할 때가 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높은 분이 내 자녀라서 호감이 든다는 정도이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데서 오는 피곤함도 있지만, 아이의 웃음에서 오는 행복함도 최근에는 느끼고 있다. 어떤 기사에서 보았는데, 평균적으로 아이는 하루에 300~500회 정도 웃는데 반해서 성인은 7~10회 정도 웃는다고 한다. 내 웃음의 대 부분은 아이에게서 오고 있고 그래서 10회보다 더 많이 웃는 듯하니 이 것은 확실히 장점인듯하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다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이제 벌써 절반이 넘게 지나갔다. 남은 시간도 아이와 함께 잘 마무리하면서 아이에게 이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늘도 아빠가 되어가며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