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일이다!
생일이 좋았다.
직장에 들어가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핸드폰, 게임, 음악까지 모두 끊었을 때도 생일날 하루, 핸드폰을 켜보았다. 이 날 하루만큼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더 많은 축하를 받고 싶었다.
생일이 좋았다.
입사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월말 마감 제도가 있어서 매달 27일은 숨쉬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CASE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하필 생일은 27일이고. 반기 마감인 6월이었다. 입사 후 첫 생일을 앞두고 홀로 지방근무 중이던 나는 CASE 관련 조사 일정을 생일 당일로 몰아 잡았다. 팀원들은 왜이리 아침부터 쏘나기 일을 하냐고 물었다. 그 날 하루는 북적이고 싶었다. 아직도 그 날 '오늘 스쳐가고 말 걸어주신 고객님들, 모두 반갑고 감사합니다'라고 쓴 신입다운 일기가 남아있다.
30살이 되었을 때, 내 생일 근처엔 연욱이 생일이 생겼다. 연욱이는 생일을 아주 솔찬히 챙긴다. 어린이날이 지나자마자, 어린이날 때 미처 다 받(아내)지 못한 선물 목록을 만들고, 근처 문방구에 가서 신중히 모델도 고르고, 선물을 사줄 것으로 예상되는 어른을 적은 다음 선물과 어른을 매칭시키는 고난도의 작업을 거친다.
다음은 이번 생일 3주 전, 실제 외할머니께 보낸 문자이다. 물론 발신인은 연욱이의 엄마이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는 연욱이가 선정한 '생일선물을 주실 것 같은 어른'에 뽑히셨습니다 ㅎ 혹시 생일선물을 사주려고 했었다는 의사를 밝혀주시면 연욱이가 받고 싶은 선물로 적어둔 품목에 관하여 말씀드릴까...합니다 ㅎㅎ"
위 문자는 호응이 좋아서 연욱이가 만든 리스트에 따라 선물 분배가 잘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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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나와의 타협도 수월하다. 부쩍 내 자신이 수고한 것 같고, 기특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귀가하고 싶었다.
월말마감으로 그 어디에도 퇴근을 합리화할 핑계거리가 없었지만 퇴근하고 싶었다. 과감히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회사 마당에 다른 선배와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는 부장님이 보였다. 그 옆을 당당히 지나치던 그 때, 부장님이 기다리던 택시가 도착했다.
부장님은 택시에 한발을 집어넣은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는 "지금 가는가?", "저녁 안먹고 가는가?", "난 웃어줘야 하는가" 등 복합적인 눈빛이 다 담겨있었다.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부장님~! 저 오늘 생일입니다"
"......(다리 한쪽은 택시 앞좌석에 들어가 있음) 어어어...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타!"
"싫어요, 저 집에 가서 먹을겁니다아"
부장님은 택시에 아직 완전히 타지도 못한채,
그저 인자 가득 미소로 날 향해 크게 손을 흔드셨다.
오늘도 CASE 보관대가 안 닫힐만큼 거대한 CASE를 내게 배정한 부장님은, 그저 손을 흔드셨다.
13년차 만에, 내 생일을 온전히 함께 할, 신남을 공유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용기를 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