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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23. 2023

좋아해, 회식아

-가끔 볼 때

어제는 환영회식이 있었다.

회식에 갈 때마다 회식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김보통 작가님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라는 (후덜덜한 제목의) 책을 보면 회식의 야만적인 모습이 다채롭게 나온다.

충성파 그 자체였던 내게 약간의 자아성찰을 일으킨 것도 역시 회식이다.

회사다니기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회식이 단순히 많았을 때가 아니고, CASE들이 많거나 힘들 때가 아니었다. 회식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난무할 때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바쁘게 일하면 가정이냐 일이냐 선택을 해야지, 둘 다 챙길 순 없지'와 같은 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가 이다. 그들은 집에서 말을 안하는가. 휴가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 중 몇몇의 가족들은 남편, 아내, 혹은 아빠, 엄마의 목덜미라도 움켜쥐고 가족안에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고군분투하였고, 그들은 귀찮다거나 부려먹는다거나 하는 푸념 속에서도 아직 내곁에 가족이 있음에 안도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어느 날, 회식에서 빠져나올 타이밍을 놓친 새벽 두시 맥주집에서 유독 술을 좋아하시는 부장님 옆에서 멍때리고 있던 날이었다. 부장님의 핸드폰이 울렸다. 사모님이었다. 그 사모님은 앞서말한 고군분투의 잔다르크 같은 분이셨다. 부장님은 '올 것이 왔구나'하는 표정을 짓고, 2초 정도 화면을 바라보다가 과감히 수신거부를 눌렀다. 즉시 다시 벨이 울렸다. 난 사모님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부장님은 전화를 받아서 '곧 끝나, 다 마셨지, 후배들이 하도...'까지 말씀하셨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전화기 저 멀리서 고성 비슷한 소리가 시끄러운 배경음악을 뚫고 들렸다. 사모님의 고성은 대략 '후배 같은 소리 하지 말라, 당신이 후배들을 잡고 있는 것이다, 당장 와라' 등이었다.

부장님은 익숙한 듯 표정변화없이 (고성이 오지 않는 척) 알겠다는 말을 반복하시다가 끊으셨다.


미래를 위해 사모님 전화올 때 번호를 봤었어야 했는데.



생각해보면, 회식의 그 순간에 또 앉아 또 술을 마시면서 또 2차를 가고, 또 술을 마시는 그 때는, 자신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을 것 같다. 그러면 이 회식의 시간이 정당하고 아주 필요하며 모두 만족했다는 생각에 더욱 즐거울 것 같긴 하다.


그러나, 해떠있을 땐 충성파이지만 해지면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나로서는 회식을 피해가는 미꾸라지다. 해떠있을 때 나의 텐션에 익숙한 팀원들은 회식참여를 독려하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벙개성 회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어제 회식은 벙개가 아닌 정식 회식이었고, 팀을 옮긴 나를 환영하는 회식이었으며, 팀원 중 한명이 힙한 MZ 갬성(?) 이란 걸 갖고 있다고 했다. 신입의 여름 휴가 계획을 들으며 퓨전 느낌이 나는 감자전을 먹어서 기분이 삼삼했다. 그리고 뒤늦게 10시 넘어  '엄마가 회식을 갔다고!?'라며 전화한 연남매에게 여-유를 담아 '가는 중이야'라고 말했다.


가끔이지만, 애증이 섞였지만. 좋아해-회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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