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센티미터, 인생의 방향이 바뀔 뻔한 순간

두브로브니크 로브리예낙 요새에서 만난 선택의 거리

by 낭만봉지 김봉석

여행은 늘 아름답게 시작되지만

때로는 아주 작은 틈에서

삶의 본심을 드러낸다.


그날 나는

불과 50센티미터 앞에서

인생의 방향을 스쳐 지나갔다.


왕좌의 게임.
조지 R.R. 마틴의 소설
'불과 얼음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HBO의 메가 히트 드라마다.


철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귀족 가문들의 음모와 전쟁,
그리고 북쪽 장벽 너머
화이트 워커와의 사투.


두브로브니크는
그 이야기의 중심 무대,
킹스 랜딩의 실제 촬영지다.


이미 성벽 투어를 하며
대너리스가 용을 찾던
민체타 타워를 다녀왔다.


성벽 위를 걷는 동안
이곳은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세트장이었다.


그럼에도
꼭 가야 할 곳이 하나 있었다.


성벽 바깥,
해안 절벽 위에 우뚝 선 요새.
레드 킵으로 알려진
로브리예낙 요새였다.

(왕좌의 게임 촬영지 '로브리예낙 요새')

올드타운 입구 옆 골목을 지나면
푸른 바다 위로
요새의 위엄이 드러난다.


그 바다는
마치 드래곤의 비늘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하나씩 오를수록
아래 풍경은 나를
더 위로 이끌었다.

(로브리예낙 요새에서 바라 본 아드리아해)

10분쯤 올랐을까.
요새 입구에서
패스권을 보여주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외관과 달리
내부는 의외로 평범했다.
그러나 층을 오를수록
올드타운은 또렷해졌다.

(로브리예낙 요새에서 바라본 올드타운)

그런데 이상했다.
이토록 좋은 풍경 속에서
스산한 기운이 계속 느껴졌다.


깊고 어두운 우물,
텅 빈 돌벽 사이 공간들.
수세기 전 전쟁의 잔상이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정상을 둘러보고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주변을 더 살폈다.


요새 돌벽 틈에는
수많은 비둘기들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었다.


퍼덕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고
기둥 옆으로 들어선 순간,


바로 옆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너무 가까웠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는 마대자루가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 몸집만 한
리트리버가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냈다.


숨이 턱 막혔다.
그 고통의 소리가
그대로 내 몸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두 번의 울음 뒤,
개는 고개를 떨군 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Oh my god”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한 남자가 달려와
개를 진정시키려 했고
주인은 울면서
앰뷸런스를 불러 달라고
관리인에게 소리쳤다.


모든 일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손과 몸이 떨리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내가 나와서
상황을 묻더니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며
내 팔을 잡고
요새를 벗어났다.


불과 50센티미터.


비둘기를 피해
기둥 아래로 들어온 지
1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그 짧은 거리와 시간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안쪽에 있었다면,
이 여정은
여기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리트리버가
왜 떨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나는 문득
스코틀랜드의
오버툰 브리지를 떠올렸다.


수십 마리의 개들이
보이지 않는 끌림에 이끌려
난간 아래로 뛰어내렸던 곳.


강렬한 냄새 하나가
본능을 자극해
낭떠러지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날의 요새에서도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두브로브니크의 화려함과
어둡고 스산한 공기.
그 대비가 이 도시를
더 신비롭게 만든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디로 갈지,
어디를 피할지,
어디에 잠시 머물지.


그 모든 선택이
결과가 되어 돌아온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로브리예낙 요새,
그리고 기둥 옆으로
몸을 피한 선택까지.


설령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감수하며
계속 나아간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걷는
삶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선택도 그러하길 믿는다.


— 낭만봉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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