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잘 도와주고 싶어!
쉬는 시간에 학생들을 둘러보면 참 다양한 성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주로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학생, 혹은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반응이 느린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이 갑니다. 바로 학급에서 가장 소외받기 쉬운 학생들이죠.
"여러분, 이번 국어 시간에는 시를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어 볼 거예요. '등 굽은 나무'라는 시를 읽고, 주인공이 운동장의 나무에 올라타서 마치 하늘을 나는 말을 탄 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요. 여러분은 하늘을 나는 말을 타면 어디를 가보고 싶나요?"
“저는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제주도까지 가보고 싶어요.”
“저는 에펠탑에 가보고 싶어요.”
“말이 우주까지도 데리고 가 줄까요?”
“구름이는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어디에 가보고 싶어?”
“….”
“선생님, 구름이는 원래 발표를 안 해요. 한 번도 하는 거 본 적 없어요.”
4학년 구름이(가명)는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고, 교과서나 공책에도 아무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눈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같은 반이던 친구들은 모두 구름이가 항상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간단한 역할극을 해볼 거예요. 모둠원끼리 의논해서 용왕, 토끼, 자라, 문어 역할을 하나씩 맡아 연습해 주세요."
“구름아, 넌 뭐 하고 싶어?”
“….”
“선생님, 구름이가 아무 말도 안 해요. 구름이는 어차피 역할극 해도 가만히 있을 거예요. 예전부터 원래 그랬어요. 그냥 저희 중에 한 명이 구름이 역할까지 하면 안 돼요?”
모둠 활동을 하면 구름이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구름이와 같은 모둠이 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설득해도 구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기에 결국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였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구름이는 원래 그래요.”
구름이는 정말 원래 그랬을까요? 아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요? 구름이가 계속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구름이를 그림자 뒤에서 햇살 앞으로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구름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학습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국어, 영어, 수학 교과의 수준을 진단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4학년 내용은커녕 1~2학년 내용에서도 학습 결손이 보였습니다. 영어는 알파벳조차 모르는 상태였으니, 수업 시간에 문장을 이해하거나 단어를 외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수학도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부터 다시 학습해야 했습니다.
때마침 '풀배터리(Full Battery) 검사'를 지원해 주는 사업의 공문을 보았습니다. 풀배터리 검사는 학생의 인지 기능, 정서 상태, 성격, 행동 등을 포함한 다양한 심리적 영역을 평가하는 검사 방법입니다. 구름이에 대해 더 정확히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어머니와 함께 전문 상담 선생님을 통해 몇 시간에 걸쳐 풀배터리 검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검사 결과, 구름이는 경계성 지능 장애, 즉 느린 학습자였습니다. 경계성 지능 장애는 지능 지수가 70~84 사이에 해당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합니다. 구름이는 언어 이해도나 표현 능력이 부족했고, 이는 수업 시간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반응이 느렸고, 항상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구름이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온전한 모국어 학습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소극적인 성격에, 어렵고 두려운 것은 회피하는 성향, 게다가 또래보다 늦게 언어를 익혔기에 구름이의 학습 능력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름이에 대해 파악하였으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작전은 바로 '구름이와 친해지기'입니다.
구름이처럼 소극적인 학생은 사회성이 덜 발달해 교사나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하루 종일 지켜봐도 구름이에게 말을 거는 친구도 없었고, 구름이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경계하기 바빴습니다.
구름이에게는 친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름이와 친구가 되어줄 만한 아이는 딱 한 명 있었습니다. 구름이와 비슷한 성향에 배려심이 많고 현명한 하늘이(가명). 원래 같았으면 하늘이에게 구름이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어머니, 하늘이는 3학년 때 교우 관계가 어땠나요?”
“여학생들이 너무 활달하고, 표현이 거침없다 보니 하늘이와 잘 맞는 친구들이 없었어요. 게다가 매년 선생님들이 구름이를 잘 돌봐달라고 하늘이에게 부탁했는데, 그걸 너무 힘들어했어요.”
맞습니다. 저희 반 여학생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그 속에서 하늘이와 구름이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하늘이에게 구름이까지 돌보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늘이에게 부탁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바로 제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보면 구름이는 내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아 주변을 관찰했습니다.
“구름아, 쉬는 시간이니까 편하게 있어도 돼. 친구들하고 놀아도 되고, 운동장을 산책하고 와도 돼.”
“…. 선생님, 물 마시고 와도 돼요?”
“당연하지, 그런 건 선생님한테 허락받지 않아도 돼. 얼마든지 다녀와.”
구름이는 모든 것을 저에게 허락받으려고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구름이의 행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3월 내내 말이 없던 구름이가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이와 작은 대화를 이어가자, 자리에 앉아만 있던 구름이가 어느 순간부터 제 옆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구름이는 제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두는 것 같았습니다.
“음? 구름아, 선생님한테 할 말 있어? 왜 계속 쳐다보고 있어?”
“어…, 음….”
“궁금하면 앞에 나와서 봐도 돼.”
(구름이가 천천히 다가온다.)
“선생님, 지금 뭐 하세요?”
“어? 이따가 할 수업 준비하지. 오늘 미술 시간에는 수묵화를 그릴 거야. 그래서 한지랑 벼루랑 붓을 챙기고 있었어.”
“벼루가 뭐예요?”
“벼루는 이거야. 여기에 물을 붓고 먹을 갈면 까만 먹물이 생긴단다.”
“저거는 뭐예요?”
“저게 먹이야. 돌처럼 딱딱하지?”
“만져봐도 돼요?”
“어, 만져봐.”
저는 구름이에 대해 교감 선생님과도 깊이 이야기했습니다. 고맙게도 교감 선생님께서도 구름이의 상담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점심시간마다 교감 선생님은 구름이를 데리고 운동장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구름이는 점차 마음을 열고, 학교 생활에 조금씩 더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구름이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졌고, 저에 대한 마음이 열렸으니 이제는 학습 보충을 할 차례입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학습 클리닉'을 신청했습니다. 학습 클리닉 선생님은 매주 교실로 오셔서 구름이의 국어 학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문해력 수업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자주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력하다 보니 구름이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방과 후 시간에 진단 평가에서 일부 교과목의 수준이 미도달인 학생들을 모아 보충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구름이도 있었습니다. 저는 구름이와 친구들이 예전부터 누적된 학습 결손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내용을 배우며, 그동안 어려워하던 내용을 천천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식도 나누어 먹고, 학습 보드게임도 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보니 보충 학습을 하던 구름이와 아이들은 꽤나 친해졌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구름이의 환한 웃음이 그 시간에는 넘쳤습니다. 구름이는 점차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차츰 성장하는 구름이에게는 아직도 큰 산이 남아 있었습니다. 구름이는 항상 자신감 부족이라는 큰 벽 앞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구름이가 그 벽을 허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로 했습니다.
“자, 오늘 체육 수업은 뜀틀입니다. 처음이니까 도움닫기를 하고 달려와서, 발구르기를 힘차게 하면서 점프를 한 후, 뜀틀 위에 앉아볼게요. 일단 낮은 높이에서 시작하겠습니다. 1번부터 출발~!”
한 명씩 힘차게 뛰어와 뜀틀을 넘었습니다. 낮은 높이이고 뜀틀 위에 앉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다들 손쉽게 해내었습니다. 뜀틀은 학생들이 아주 재미있어하는 체육 수업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덕분에 구름이도 표정이 좋네요. 자기도 할 수 있겠다는 눈빛입니다.
드디어 구름이의 차례입니다. 구름이는 느리지만 도움닫기를 하면서 뜀틀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뜀틀 바로 앞에서 발구르기를 하지 못한 채 멈춰 섰습니다. 가까이 와보니 생각보다 무서웠나 봅니다.
“구름아, 겁먹을 필요 없어. 이거 푹신해서 안전해. 살짝 뛰어서 이 위에 앉아볼까?”
두려워하던 구름이가 조금 뒷걸음질을 치려다가 다시 앞으로 오더니 낮은 뜀틀 위에 살짝 앉아보았습니다. 푹신한 뜀틀이라 구름이도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용기를 내어 뛰어올랐습니다. 2단계에서는 멈추지 않고 뛰어서 뜀틀 위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3단계, 4단계를 거쳐 구름이는 뜀틀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구름이는 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뜀틀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체육 시간 내내 벽에 붙어 얼어있지 않고 계속 도전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그런 구름이를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구름이의 눈빛은 분명 달라져 있었습니다. 음악 시간에 돌아가며 국악 동요를 불러야 했을 때, 구름이의 순서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구름이에게도 노래를 부를 기회를 주었고, 언제나처럼 구름이가 주저하다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구름이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구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저희는 모두 구름이의 긴장되는 마음과 용기를 내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조용히 귀를 기울였고, 저 또한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며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그 순간, 구름이는 자신을 억누르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구름이가 노래 부르는 거 처음 들어요.”
“우와~. 구름이가 이제 용기가 생겼나 봐요.”
“구름아, 정말 잘했어.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예쁜 줄 몰랐네. 다음에도 이렇게 용기를 내렴.”
영어 시간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역할극을 준비하는데 구름이와 같은 모둠의 친구들이 걱정이 많았습니다.
“연기를 할 배우가 3명, 소품 준비팀이 1명 필요한데, 어떻게 할까?”
“일단, 구름이는 무대에 서는 걸 힘들어하니까 소품 준비팀 할래?”
“….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연기할게.”
“어? 뭐라고?”
“나 토끼 연기하고 싶어.”
“정말? 네가 연기를 할 거라고? 아... 알겠어. 그럼 구름이가 토끼 역할을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구름이가 자진해서 배우 역할을 맡다니! 친구들 앞에서는 발표조차 힘들어하던 구름이인데, 무대에서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구름이는 저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더듬더듬 연기를 해내었습니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름이는 변하였고, 성장했습니다.
경계성 지능 장애인 구름이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 언어 학습이 늦었습니다. 소극적인 성격과 회피하는 성향으로 수업에도 잘 참여하지 못했고, 교우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문제 성향이 눈에 띄지 않다 보니,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지원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구름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각종 검사를 실시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준에 맞는 보충 학습을 통해 학습 결손을 메우고 성취감을 느끼게 했으며, 조금씩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한 학년이 끝나갈 무렵,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보람 있었던 장면을 떠올려 보니 구름이가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일 년 동안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성장한 구름이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전, 휴직 중이었음에도 개인적인 용무로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습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틈으로 구름이가 지나가며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구름이는 쭈뼛하며 지나갔습니다. 용무를 마치고 현관으로 나가보니 구름이가 현관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구름아, 잘 지내?”
“….”
“선생님 보고 싶었어?”
“….”
구름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입 안에 맴돌지만 차마 뱉지 못했습니다. 다시 이전처럼 돌아간 걸까요? 아니면 너무 반가워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을까요? 시간이 없던 저는 그냥 구름이에게 안부만 전하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사람에게 1년의 시간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1년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름이에게 저와의 1년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일 수도 있지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구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구름이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구름이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으로 당당히 걸어가기를 언제나 기원하며,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