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봉준 Dec 12. 2024

첫날,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른단다

[4장] 참교사가 되고 싶어?

등장인물 소개 *     

주훈민 선생님(훈민샘)

경력 15년 차의 선생님. 글쓴이의 교육관을 반영한 가상의 인물,     

정모음 선생님(모음샘), 김자음 선생님(자음샘

경력 2년 차의 신규 선생님. 배우고 싶은 열정이 가득한 가상의 인물.


모음샘 : 훈민샘, 내일이 개학날이라니 고민이 많아요.

자음샘 : 맞아요. 제가 맡은 3학년의 작년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저희 반에는 ADHD 학생이 있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해서 수업이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모음샘 : 저희 5학년은 더 심하대요. 학교폭력이 일어날 뻔한 적도 있고, 선생님 물건을 훔치는 애들도 있었대요.

훈민샘 : 새로 맡을 학급의 학생들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군요.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먹는 건 아닐까요?

자음샘 :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들에 대해 미리 알아둬야, 어떻게 지도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비할 수 있잖아요.

훈민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좋지만, 그 정보 때문에 선입견을 가질 위험도 있어요. 학생들은 매년 성장하고 있고, 새로운 학년이 되면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해요. 또,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도 있죠. 그런데 ‘저 학생은 문제아야’라고 생각하고 첫 만남을 가지면, 나도 모르게 그게 티가 날 수 있어요. 눈치 빠른 애들은 선생님의 눈빛만으로도 ‘선생님이 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느낄 거예요.

모음샘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훈민샘 : 학생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많이 알아두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저는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그 정보를 전적으로 믿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선생님은 너희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어’라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말과 행동에서 다른 학생들과 차이를 두지 않으려고 해요.

자음샘 작년에 문제 행동을 했던 학생이 그렇게 한다고 달라질까요?

훈민샘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기 초에만 조심하다가, 금세 본모습이 드러나겠죠. 하지만 지켜보면 꼭 한두 명은 작년과 다른 모습을 보여요. 예를 들어,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던 학생이 새 학년이 되면 적극적으로 바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 학생이 부끄러워할까 봐 배려해 발표 기회를 적게 준다면, 이 학생의 다짐은 의미를 잃을 수 있겠죠?

모음샘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잖아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작년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문제 행동을 계속 보이던걸요?

훈민샘 맞아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 명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우리 선생님은 편견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음샘 연기력이 중요하겠네요.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개학 날, 제비 뽑기로 앉는 자리를 정했는데, 작년에 갈등이 많았던 두 학생이 짝이 되었어요. 두 학생이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알고 있는데, 공평하게 뽑은 대로 앉혀야 할지, 아니면 미리 들은 정보를 고려해 자리를 바꿔야 할지 결정을 못 하겠더라고요.

훈민샘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는데요?

자음샘 둘이 싸우면 안 되니까 바꿔줬죠. ‘너희 작년에 사이가 안 좋았다며? 같이 앉으면 또 싸울 수 있으니까 자리를 바꾸자.’ 이렇게요.

훈민샘 저라면 자리를 바꾸지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선 저는 작년에 두 학생 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모르는 척할 거예요. 대신에 실제로 일이 생기면 그때 적합한 방법으로 훈육할 준비는 해둘 거죠. 학급의 규칙을 정하고 선생님의 교육관을 보여주는 학기 초부터 예외를 두면, 학생들이 저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성향의 학생들인지, 선생님의 교육관과 얼마나 잘 맞는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죠. 선택은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거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선생님들의 몫이니까요. 제 의견은 참고만 하세요.(웃음)

모음샘 무책임한 거 아니세요?(웃음) 어쨌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니, 참 어렵네요. 애초에 문제가 안 생기게 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

훈민샘 친구들 간의 갈등, 학생들의 문제 행동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가느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느냐인 거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회피만 해서는 선생님도, 학생들도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기르기 힘들 거예요.

자음샘 : 좋아요. 올해는 선생님 말씀처럼 한번 해볼게요. 알지만 모르는 척, 내가 지켜볼 테니, 너희의 새로운 모습을 나에게 보여다오!

모음샘 저는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요. 작년처럼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선생님이 되고 싶거든요. 내일 다들 파이팅!     




  신규 선생님들께     


  새 학년을 맞이하는 마음이 어떠신가요? 많이 떨리시나요? 저도 교직 경험이 쌓였지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마다 늘 설레고 떨리는 건 변함이 없답니다.     


  우리 반에는 어떤 아이들이 있을까? 어떤 표정으로 아이들을 맞이해야 할까? 첫날에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하지? 아마 모든 선생님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설레는 마음과 떨리는 마음을 가득 안고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선생님이세요.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환영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시작이 될 거예요.     


  새로운 학년을 앞두고 선생님들께서는 학교의 유명한 금쪽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으셨을지도 몰라요. "얘는 산만하다더라," "얘는 친구들을 때린다더라," "얘는 소심하다더라" 같은 이야기요. 물론, 이 학생들이 새 학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선생님들께서 학교를 옮기실 때, 이전 학교에서의 실수나 안 좋았던 이미지가 새로운 학교에 전해지는 걸 원하시지 않으시죠?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에 가셨는데 이미 누군가가 선생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면, 애써 가졌던 의지가 꺾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학생들도 마찬가지랍니다. 분명 새로운 선생님과 잘 지내고 싶어서 노력하려는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 작년에 실수한 적이 있다 해도,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새 학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의지를 존중해 주세요. 그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속 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학생에 대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판단하지 않으려고 해요. 말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되기 쉽고,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곤 하잖아요.     


  물론, 대부분 들은 이야기가 맞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분명 있답니다.     


  “선생님, ○○이는 요새 어때요? 작년에는 친구들이 발표할 때마다 막 끼어들어서 힘들었거든요”

  “여전히 그런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려고 노력하더라고요. 말하다가도 ‘아차’ 하면서 멈추기도 하고요.”

  “한 살 더 먹었다고 철이 들었나 보네요.”     


  이처럼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회를 주세요.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 대신, 설렘과 기대를 품고 새 학년을 시작해 보세요. 편견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려는 노력만으로도작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