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당대표로 이준석이 선출됐다. 지난 토요일자 중앙지 1면 헤드라인은 모두 이준석을 조명했다. 이준석 대표를 향한 언론의 수식어는 비슷하다. ‘돌풍’, ‘판을 엎었다’, ‘36세 젊은 정치인’, ‘정치권 세대교체 신호탄’, ‘2030의 지지’, ‘MZ세대’, ‘공정한 경쟁’…. 그가 36세의 젊은 정치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제1야당 리더가 선출됐다 해서 세대교체 신호탄이나 판을 엎었다 따위의 수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론에서 그의 상승기류를 그런 식으로 따옴표에 묶어 강조하는 게 조금 불안했다. 위근우 평론가는 이미 보름 전에 언론의 이런 태도를 꼬집었다.
“요 며칠 새 '이준석 돌풍'이라는 게 기사 제목에서 자주 보이는데 이것이야말로 언론은 현실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생산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이준석 돌풍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한들, 돌풍이라는 하나의 팩트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전제한다는 점에서.” - 위근우 평론가 SNS 5월 30일 자 글 중 일부
‘이준석 돌풍’을 재생산하는 데 가담할 기사에 제목을 달아야 하는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당장 이날, 월요일 1면 세컨기사로 정확히 그런 내용의 기사가 들어왔다. 심지어 이준석 당대표 당선이 경기도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나는 어떻게든 제목에 ‘이준석’과 ‘돌풍’을 한 따옴표 안에 묶어 표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돌풍이 도내 정가를 ‘강타’했다는 말 역시 쓰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이준석이 주체가 되지 않는 제목을 넣고 싶었다.
[2030이 묻는다 “누가 더 혁신할 건가”]
위의 제목을 처음 데스크에 올렸다. 기사에서 ‘이 기사가 1면 세컨이어야 함’을 피력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었다. “이로 인해 ‘여야 중 누가 더 혁신하고 변화하느냐’가 다가올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전망이다.”나는 이준석이 정말 혁신의 아이콘이기 때문에 2030 세대의 지지를 얻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가진 몇 개의 표지가 타 후보에 비해 그를‘혁신의 아이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리라. 위근우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젊고 새로운 바람이 아닌, 낡고 노회한 한국 수구 보수주의와 차별주의의 새로운 반복과 회귀’이며, 소위 그가 일으킨 ‘돌풍’이란 것은 ‘기존 기득권의 재정비된 백래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당대표 선출은 한 가지 분명한 현상을 방증한다. 유권자는 ‘누가 더 혁신에 가까운가’를 묻고, 재고, 따지고 있다는 것. 비록‘유사 혁신’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기사 제목에 2030 유권자를 주체로 삼아 그들의, 아니 우리의 질문을 넣고 싶었다. “그래서, 누가 더 고쳐 쓸만한 사람인 건데?”
대차게 킬 당한 제목이 됐다. 결코 제목으로 쓰고 싶지 않았던 ‘이준석 돌풍’과 ‘정가 강타’ 두 말이 모두 합쳐진 제목으로 수정됐다. 정확히는, ‘이준석 돌풍’ 같은 (편집자로서) 진부하고 (기자로서) 무책임한 말이 제목에 올라가는 걸 막지 못했다. 진부함, 무책임. 편집기자로서 듣기 싫은 두 개의 평가를 피하지 못할 1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