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1일 월요일 편집자의 일기
벌써 빈소가 차려졌다. 국무총리와 여·야당 대표, 행안부 장관, 지자체장이 빈소를 찾았다. 도지사는 (그가 온다고 하니 ‘촬영할 만한 수준으로’ 세팅된) 현장에 찾아가 구조대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쿠팡 대표는 유가족을 평생 지원하고 김동식 구조대장의 이름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에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착착 진행되는 일들. 언론은 여기에 신파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올리는 것으로 매뉴얼 안의 일을 해낸다.
소방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구조대장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게 오늘 기사의 골자다. 편집회의가 끝나고 1면 톱기사가 결정됐을 때 편집부장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으니, 소방당국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은 부제로 내리라고 말했다. 대신 애절하고 절절한 제목을 뽑아보라고 했다. 타사에서 어떻게 제목을 뽑았는지 살펴봤다. 지난 목요일 조선일보 1면은 다른 부연설명 없이 화재 현장 사진 위에 [“저 안에 대장님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구조대장의 죽음이 확인된 이후엔 ‘기적은 없었다’, ‘끝내 주검으로…’등의 제목을 가진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
‘애절하고 절절한’ 제목을 뽑으란 지시에 일부러 허벅지를 꼬집는 것 같은 억지스러운 말들이 먼저 떠올랐지만 어쩐지 그런 제목은 오늘 기사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재 당시 소방당국의 판단(김 대장을 포함한 5명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기사에 ‘기적은 없었다’ 따위의 문장은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는 문장과 같았다. 하지만 편집부장에게 지시받은 것처럼 위험 소지가 있어서 기사 내용을 그대로 따라 소방당국을 비판하는 투로 제목을 뽑을 수도 없었다.
[“체감 300도 화마, 인력투입 말았어야”]
이럴 때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제목은 ‘말’이다. 기사 속에 담긴 멘트를 따옴표 그대로 제목으로 올리는 것이다. 편집기자의 가치판단이 가미된, 가공된 문장이 위험할 것 같은 기사라면 그냥 제보자나 인터뷰한 사람의 멘트를 그대로 인용하면 문제 될 게 없다. ‘있는 말을 그대로’ 썼을 뿐이라고 말하면 되니까. 화점 부근의 체감온도가 300도 수준이라 도저히 내부 진입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 대원들의 증언을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사실 내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게 그렇게나 ‘위험한 기사’인 이유가, 적어도 나에겐 설득력이 없었다. 소방대원이 현장에서 죽었다면 당연히 지휘대의 책임을 묻고, 지휘대는 누가 묻기 전에 먼저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상식적인 게 아닐까. 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취재를 한 사회부 동기가 이런 기사를 써 온 것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밤을 새가며 현장 취재를 한 사회부 동기는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고, 현장에 있던 기자가 느낀 바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