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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주연 Jun 18. 2021

와르르

2021년 6월 18일 금요일 편집자의 일기

몇 명이 죽어야 1면에 나갈 사건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기준이라도 있는 건가. 


출근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큰불이 될지 몰랐다. “이천에 애들 내려보냈어”라는 사회부장의 말이 들리고, “아니 불이 다시 붙었대?” 묻는 말도 들렸다. 작년 4월 물류창고 화재가 아직도 잊히지 않은 지역에서 다시 비슷한 화재가 발생했다. 사회부 동기는 이미 현장에 나가 있었다. 1면에 오를 만큼 큰 화재로 번지지 않기를 바랐다. 


사상자가 없나 보다, 안도했다. 편집회의 후 결정된 1면 기사 중에 이천 소식은 없었다. 무슨 떡 관련 기사가 올라온 걸 보고선 ‘아, 진짜 이번 이천 화재는 별로 크지 않은가 보다’하고 염려를 내려놓았다. 정부에서 ‘떡 만들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라 경기도에서도 지역 떡 발전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 이런 내용의 톱기사를 읽으며 온통 떡 생각뿐이었다. 제목을 재미있게 지어야 할 것 같아 온갖 떡 속담을 검색해봤다. 누워서 떡먹기,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어쩌고, 그림의 떡,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이건 속담이 아니구나, 어쨌든)…. 먹을 게 많지 않던 시절에 떡은 정말 귀한 음식이었나, 이런 생각을 하며 제목을 짜는 중에 갑자기 1면 메인 사진이 바뀐다는 지시를 받았다.


원래 톱기사에 딸린 작은 1단 사진이 메인이었다. 이천 물류센터에 검은 연기와 불이 치솟는 사진으로 바뀌었다. 사진만 메인으로 오고 기사는 1면에 싣지 않았다. 회사 벽에 걸려있는 티브이를 봤다. 여전히 화재 진압 중인 가운데 소방관 1명이 고립돼있다는 자막이 떴다. 왜 1면 사진만 바뀌고 기사는 싣지 않을까, 의아했다. 불타는 물류센터 사진 아래에 떡 기사가 실리는 것도 이상했다. 급하게 1면 레이아웃을 바꿔봤다. 떡 기사는 2단으로 얇게 우측으로 빼서 최대한 메인사진과 겹치지 않게 만들었다. 편집부장에게 바꾼 레이아웃을 보여드렸다. 부장은 원래 레이아웃으로 가자고 했다. 기사도 들어가지 않는데, 화재 사진 아래에 ‘떡부심’이란 제목이 커다랗게 있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지금 내가 1면에 짧게라도 이천 기사를 넣어야 하지 않을까 의견을 내도 될까. 만약에 사망자가 1명이라도 나왔다면, 고립돼 있다는 소방관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다면 1면 기사로 올라왔을까.    


가장 좋은 건 1면에도, 사회면에도 실리지 않을 만큼 사소한 불씨로 화재가 끝나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이미 사회면 톱기사가 될 만큼, 저녁 뉴스 메인 보도를 다 차지할 만큼 큰불로 번진 상황이라면, 게다가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떡 기사는 더 중요한 얘기에 자리를 양보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제목은 ‘떡부심’이라고 써놓고 전혀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황은 제목 따라 간다고 어제 말했는데, 예외도 있다.


그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뉴스를 찾아봐도 소식이 없다. 현장에 있는 사회부 동기 SNS 계정에 글이 올라왔다. 


“산소통으로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 기적처럼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랐지만, 무너지는 건물을 보고 있자니 맥이 탁 풀렸다. 팀의 리더, 두 아이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우리들의 소방대원, 故 김 소방경-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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