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8일 화요일 편집자의 일기
오늘 톱기사는 소위 ‘야마’가 바뀐 기사다. 처음 주제는 ‘李지사 경선 승리 땐 9월 사퇴 … 공공기관장 무더기 공백 우려’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뽑히면 9월에 도지사직을 내려놔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경기도 8개 산하기관장의 임기가 다 그쯤 해서 종료된다. 도지사도 없고 기관장도 공석이고. 그런데 지역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바로 내년이라 그때 뽑히는 도지사에 따라서 새 기관장들이 싹 ‘물갈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새 인물을 뽑는데 공백기가 길어질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에 맞춰 제목을 정리했다.
[달아오른 대선 경선… 공공기관장 무더기 공백 우려]
그런데 최종으로 출고된 기사의 야마가 아주 바뀌어버렸다. ‘이 지사 사퇴 시기랑 무려 8명의 공공기관장 임기 종료 시기가 겹친다? 오호, 대권가도를 향한 ‘이재명 사단’에 과연 어떤 인물들이 합류할까 주목된다’는 내용으로. 나는 주제가 바뀌기 전 처음 기사를 기관장의 무더기 공백으로 이어지는 행정 차질, 그에 따라 도민에게 미치는 피해까지 우려하는 내용으로 읽었다. 하지만 바뀐 주제로는 도무지 그런 상상력이 뻗치지 않았다. 오직 여권 대선 주자 1위, 경기도지사 출신 중 최초로 대통령 자리를 꿰차리라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바로 그분을 어필하기 위한 기사, 적어도 가장 첫 번째 독자인 나는 그렇게 읽었다.
기사 세컨 리드에 ‘이 지사 사단’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예능계 투톱 나영석, 김태호 PD 뒤에 자주 붙는 ‘사단’이라는 말이 정치인에게도 훌륭하게 어울렸다. 그대로 제목으로 뽑았다.
[달아오른 대선 경선… ‘李사단’누가 될까 주목]
기사의 ‘야마’라는 건 생각보다 아주 손쉽게 바뀌기도 한다. 마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몸을 살짝 15도 정도 틀어버린다거나, 한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사물 중에 초점을 맞추려는 피사체를 바꾸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일이다.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하면 그냥 내 몸을 살짝 틀어 프레임 바깥으로 밀어내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전체 기사에서 몇 개 문장만 수정하면 제목이 ‘공공기관장 무더기 공백 우려’가 ‘李사단 누가 될까 주목’으로 바뀔 수 있다.
프레임 바깥의 것, 초점을 맞추지 않은 사물에까지 시선을 두는 친절함은 기자의 덕목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의 논조에 따라 데스크에서 결정한 피사체를 담는 게 기자가 하는 일의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조금 힘이 빠지기도 한다. 특히나 5월18일에 그저 특정 정치인을 세워주기 위해 야마까지 바꿔가며 올린 톱기사를 접했을 때 더더욱 그렇게 느낀다.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날, 날, 날… 각종 기념일에 맞춰 1면 톱기사를 만들어냈던 우리 회사 신문은 오늘 어떤 피사체를 담아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