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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주연 Jun 14. 2021

감각이 전부였던

2021년 5월 20일 목요일 편집자의 일기

어떤 과거는 기억이 아니라 느낌으로 남는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도 대화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과거가 있는가 하면, 며칠, 몇 시간 전 일일지라도 감각에 의존해서 떠올리게 되는 과거가 있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가 기억나고, 그날의 햇빛이 자동차 보닛을 달굴 만큼 강한 수준인지, 솜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섬세한 정도인지 구분할 수 있다. 한 과거 안에서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사이는 그래서 매우 드물고 귀하다. 감각은 그렇게 각자의 세계를 쌓는, 그 골격을 지탱하는 철근과도 같다. 


나는 내 대학 시절을 느낌으로 기억한다. 내가 전공한 문학의 이론적인 것들은 머릿속 어딘가를 떠돌겠지만 그게 내 이십 대를 지탱하는 골격은 아니다. 나는 다만 대학 외롭고 추웠던 학관 건물을 느낌으로 안다. 봄볕 들어오는 강의실에서 점점 나른하게 들리는 교수의 목소리를 느낌으로 듣는다.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 나에게 공부하라는 압박을 주지 않는 광활한 공간에서 요령 없이 공부했던 도서관을 느낌으로 거닌다. 나는 내 스무살 적 기억을 모두 느낌으로 쌓았다. 


비단 나만 그럴까. 캠퍼스를 배경으로 이십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그 몽롱한 나이대를 기억할 때 감각에 의존할 것이다. 오늘 1면 톱기사는 그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가장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고 내려와 풀어낸 글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제목을 뽑는 데 있어 고민하게 할 변곡점을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코로나가 20, 21학번 새내기의 캠퍼스 라이프를 앗아갔다’는 내용의 기사는 수도 없이 많이 나갔으며, 심지어 지금은 새학기 시즌인 3월도 아니다. 이미 1학기가 중간을 넘어섰다. 반드시 5월20일 목요일 1면 톱으로 나갈 당위성이 전혀 없는 기사인 것이다. 고민할 변곡점이 지뢰처럼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주 간단한 단어를 나열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새내기, 캠퍼스, 사라졌다, 앗아갔다, 코로나, 집콕, 혼술, 방구석... 

그 단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본다. 깔끔하게 4어절로 정리됐다. 


[사라진 캠퍼스, 방구석 새내기] 


이렇게 한 줄로만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단조로워진다. 새롭지도 않고 당위성도 없는 기사에 단조로운 제목이라면 1면 톱기사 자리가 너무 큰 신발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터였다. 위의 문장을 가지고 머릿속으로 좀 더 놀이를 해봤다. 


사라진 캠퍼스 

방구석 새내기 


두 줄로 써보니 좀 더 긴장감이 들었다. 그래도 밋밋했다. 만두찐빵 가게 창문에 붙은 메뉴판을 ‘만찐두빵’으로 읽는 것처럼 위아래 크로스로 읽어봤다. ‘사라진 새내기, 방구석 캠퍼스’. 말이 됐다. ‘사라진’과 ‘새내기’의 색을 옅게 빼서 하나로 읽히게 했다. 사실 나의 이 소심한 시도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내 설명을 들은 편집부장님이 “그래, 이렇게 가보자”라고 밀어줬고, 사회부장이 “아~ 이거 이렇게 이렇게 읽히라고 이렇게 한 거구나? 잘했네.”라고 알아봐줬다. 이정도면 1면 톱 제목에 아주 약간 과감한 시도를 계획한 편집기자 입장에선 꽤 뿌듯한 성취였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배달된 신문을 봤다. 모니터로 봤을 때보다 ‘사라진’과 ‘새내기’의 색이 진하게 인쇄돼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이 제목이 누군가의 감각을 일깨우길, 그래서 이토록 보편적인 기사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까지 건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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