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6일 편집자의 일기
지난주 어느 날 밤 사회부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사회부장에게 ‘코로나 시대, 택배의 의미’라는 큰 주제를 하나 받았고, 그걸로 다음 주 월요일 1, 3면을 채워야 하는 특명을 받았다고 했다. 주제를 정하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서울신문의 ‘달빛노동 리포트’였다. 지난해 코로나로 물동량이 크게 늘자 소위 ‘까대기’로 불리는 분류작업의 노동 강도가 세지고 그로 인해 택배노동자 사망자가 급증했다. 그럼에도 코로나 시대는 더 많은 택배를 요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는 내 물건을 옮겨주는 노동자가 ‘내 눈에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선물이 놓여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기록이 바로 ‘달빛노동 리포트’다.
동기에게 ‘달빛노동 리포트’ 기사 링크를 찾아 보내주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꼭 필요한 사람들을 우리는 점점 더 주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아. 말만 ‘필수노동’이라고 하지, 사실 우린 그들이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에 우리의 활동 영역을 침범하는 걸 꺼리잖아. 아파트 택배대란이 그 반증 아닐까? ‘당신의 노동은 꼭 필요해요. 하지만 당신의 노동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는 마음. 새벽배송 붐도 비슷한 이유일 것 같아.”
짤막한 조언을 하나 해줬다는 이유로 오늘 받아든 기사는 제목 뽑는데 더 고민이 됐다. 특히 동기가 1면 톱기사를 올린 시간이 오늘 새벽 4시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더더욱. (주말 내내 택배기사를 취재하고 또 새벽까지 기사를 썼을 동기. 내가 뽑는 제목에는 택배기사뿐만 아니라 취재기자의 그 수고까지 함께 달려있다. 편집기자의 노동이란 건 본인이 빛나지 않는 대신 타인의 노동을 빛낼 수도, 훅 꺼뜨릴 수도 있다.)
기사 제일 첫머리에 택배기사 모양 이모티콘과 함께‘박스 너머 사람을 보자’라는 문구가 적힌 그래픽 부분을 지면에서 ‘컷’이라고 부른다. 이 컷에 들어가는 문구가 제목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사 전체의 내용을 함축하면서도 본인의 기사가 세상에 미칠 파급력이 어떠했으면 좋겠는지 그 바람까지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기사 헤드라인을 침범할 만큼 지나친 의미를 담으면 곤란하다. 보통 컷 문구는 취재기자나 데스크가 적어서 주는데, 취재기자 중에 컷 문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 오늘이 그런 경우였다. 쌓여가는 박스, 그 뒤에 가려진 사람, 가려진 노동.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존재를 의식하고 싶지 않은, 점점 주변화되는 노동. 그 의미를 계속 곱씹다가 첫 제목을 뽑았다.
[상자 쌓일수록... 노동은 외면받는다]
사실 이 제목을 데스크에 넘기면서 수정될 거라고 예상했다. ‘노동은 외면받는다’는 너무 당연한 얘기니까. ‘택배노동자의 노동이 외면받고 있다’ 는 문장은 새로울 게 없는 당연한 말이니까.‘누군가의 노동이 외면받고 있다’는 문장이 새로울 게 없이 당연해서 제목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다. 결국 데스크를 거쳐 [상자 쌓일수록... 죽을까 겁난다 ‘절규’]가 최종 제목으로 정해졌다. 기사 속 택배노동자는 문장에서도 시종일관 어떤 굳은 ‘심지’를 굳건히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취재수첩을 들고 자기를 따라다니는 기자 앞에서 찬 도시락을 들이키듯 입에 욱여넣는 모습을 보일지언정 살인적인 노동 앞에서 그는 ‘절규’하지 않았다. ‘절규’라는 단어가 그 노동자가 지키려 했던 그 단단한 심지를 감히 건드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밤 11시에 기사를 쓴 사회부 동기에게 한번 더 전화가 왔다. 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그에게 제목을 뽑는 내내 곱씹었던‘박스 너머 사람을 보자’라는 컷 문구를 어떻게 생각해낸 건지 물었다.
“택배기사가 물건을 쌓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어느 순간 기사가 박스에 가려져서 보이지가 않더라. 그 제목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어. 그냥 사실을 쓴 거야. 그리고 나는 박스에 가려진 노동자를 취재하려 했으니까 그런 문장이 나왔어. 박스 너머 사람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