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7일 목요일 편집자의 일기
내가 이 직업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더운 날 시끄럽게 가동되는 낡은 에어컨 소리를 들으며, 시선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어 목을 불편하게 하는 모니터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스친다.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평생은 몇 살까지를 얘기하나. 흔히 정년이라고 하는 60살은, 내 생각보다 훨씬 젊은 나이가 아닐까.
며칠 전에 회사 동료들과 카페에 갔다. 그곳에서 벌써 1년도 더 된 얘기가 나왔다.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들. 아니, 회사가 ‘밀어낸’ 사람들. 어느 날 세 명의 부장들이 ‘특집부’로 발령이 났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부서길래 이름이 특집부일까, 철없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특집부엔 내가 속한 편집부 부장도 포함이 됐다. 다음날 출근하니 그의 자리가 이미 치워져 있었다. 특집부는 처음에 시간을 축내는 일을 맡았고, 조금 지나서는 신문 확장(신문 구독자 모집)을 했고, 그리고 세 명 모두 퇴사를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나보다 늦게 입사한 동료가 있어 그 일을 다시 설명했다. 이런 일이 있었어. 회사가 깔끔한 방식으로 사람을 밀어냈던 일이.
[평균연령 41.6세 전국 2번째로 낮아]
국내 인구는 줄어드는데 경기도는 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아무래도 집값이 비싼 서울 대신 경기도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하나고. 또 경기도는 평균연령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은 지자체다. 41.6세. 처음에 부제를 ‘평균연령 41.6세, 전국 2번째로 낮아’ 이렇게 뽑았다. 처음엔 ‘2번째로 젊어’라고 썼다가, 평균연령은 ‘젊다/늙다’보다 ‘낮다/높다’와 더 호응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판단해서다. 그런데 데스킹을 거쳐 다시 ‘젊어’로 수정됐다. 경기도가 ‘젊은 도시’라는 걸 부각하려고 그랬을까. 어쨌든 경기도는 이제 사람도 많고 젊은 사람들도 비교적 많은 도시가 됐다.
[경기도, 4060 단절된 일자리 잇는다]
같은 날, 같은 지면에 경기도가 실직한 중장년 세대를 위해 기업과 연결해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40대는 중장년층에 포함된다. 40대는 실직을 경험할 수도 있는 나이다. 지자체에서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는 복지 정책을 내 줄 수 있는 나이다. 어떤 기사에 마흔은 한 지자체의 평균연령인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나이대에 직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아직 남은 날들이 살아온 날만큼이나 길게 남았는데 사회는 내게 ‘물러날 것’을 강요할 수도 있다.
둥글어지고 작아지는 지구 위에서 자리를 갖는 일, 또는 자리를 지키는 일은 지난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도처에서 장소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며 포클레인 앞에 드러누운 농민들, 구조조정에 저항하며 연좌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 투쟁의 형식들은 어딘가 닮아있다. 점거, 누워 있기, 앉아 있기, 아니면 장소를 원래 정해진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계산대 위에서 잠을 자는 홈에버 노동자들)…… 몸 자체가 여기서는 언어가 된다. 몸은 문제의 장소 위에 글자처럼 쓰인다. ‘나는 여기 있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 위하여. ‘우리가 수없이 입으로 말했을 때 당신들은 듣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몸으로 글씨를 쓴다. 이 글씨를 읽어달라.’ 그러므로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에 대해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장소에 대한 권리를 부정하는 상징적 행동들 (내쫓기, 울타리 둘러치기, 문 걸어잠그기, 위협이나 욕설 등)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되곤 한다. ‘여기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다. 당신은 이곳을 더럽히는 존재이다.’
…
현실의 인간은 그처럼 가볍게 삶의 근거지를 바꿀 수 없다. 그는 가는 곳마다 기억의 무거운 짐을 끌고 다녀야 하는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갈 때마다 이 짐은 점점 불어나기 때문이다. 쉽게 떠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쉽게 잊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85~296p
마흔 살, 지금 이 사회에 가장 많은 사람이 속한 나이대. 그 정도 나이를 먹으면 ‘우리는 쉽게 잊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게 간단하게 잊히기에 사람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기억만이 유일한, 영원한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