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9일 금요일 편집자의 일기
제목을 짜다보면 어느 날은 이상한 심술이 드는 날이 있다. 제목에 들어가야 할 중요한 단어나 주체를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날. 특정한 지표 없이 기사의 주인공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을 때가. 신문 제목은 특히 인물의 핸디캡을 좋아한다. 그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니까. 그런데 그 핸디캡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만큼 내가 더 소개해주고 싶은 면은 감춰지고 만다.
오늘 ‘사람들’ 지면의 톱기사는 시각장애인 조향사 양성을 처음 제안해낸 장애인복지관 관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직업이 안마사처럼 특정 직군에 한정된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후각이 발달했다는 장점을 조향사와 연결했다. 올해 자격증을 딴 교육생이 세 명이나 된다.
향수 공방에 간 적이 있다. 향수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시향을 수차례 반복하며 각각의 향을 구분할 수 있도록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안개 향, 시트러스 향, 우거진 숲 향, 코튼 향 ….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정말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향들도 있다. 이럴 땐 시각적 표현을 빌려온다. 노란색 향, 보라색 꽃 향, 푸른 바다 향…. 시각적 심상에 기대 향을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시각 안에 갇혀 향기의 세계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핸디캡이기도 하다. 시각은 ‘비非 시각장애인’이 지닌 핸디캡이라고 할 수 있다. 보이는 대로만 세상을 알고 있으니까.
[“향은 보는 게 아니니까… 우리 능력은 끝이 없어요”]
이렇게 처음 제목을 뽑았다. 기사 맨 처음에 “시각장애인에게 직업의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라는 멘트를 가만히 곱씹었다. 직업의 한계가 없다는 것보다 이들이 가진 능력의 한계가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이원하의 시구가 떠올랐다.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능력이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사람은 그가 지닌 능력에 따라 수없이 많은 ‘정체’를 지닌다. 시각에서 벗어났기에 비로소 ‘향’ 그 자체로 향기를 대할 수 있는 그 능력, 비非 시각장애인은 갖고 있지 않은 그 능력엔 끝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아쉽게 데스킹에서 제목은 수정됐지만 오랜만에 이원하의 시집을 다시 꺼내봤다. 코로나라 해외여행 대신 다 제주도로 향하던데, 나도 그 인파를 따라 제주도로 가게 된다면 꼭 들고 가게 될 시집. 누구든 끝없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빼곡한 우리의 정체.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