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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주연 Jun 14. 2021

본업도 허술한데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편집자의 일기

이해하기 어렵거나 까다로운 기사를 마주했을 때 의외로 쉽게 제목이 뽑히는 경우가 있다. 취재기자가 본인이 정한 ‘정확한 목표’를 향해 논리적으로 기사를 쌓았을 때 다루는 주제가 어려워도 제목이 쉽게 나온다. 


사회부 동기가 몇 주 전부터 ‘경찰 조지는(그는 ‘조진다’는 말을 무척 애용한다) 기사를 기획하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언질을 줬다. 그는 법원과 경찰을 두루 출입하면서  점점 ‘무기’의 개수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의 기사가 자주 1면에 올라오니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날도 출근하자마자 딱 봐도 수 개월간 조직 내부에서 어떤 병폐를 발견하고 조사하고 분석한 티가 나는 기사가 데스크에 올라와 있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서 경찰개혁이 원년을 맞았는데, 정작 경찰이 본분인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기초가 안됐는데 응용을 바라는 경찰 수뇌부의 못된 버릇을 고쳐주려 했는지, 사회부 동기는 기사를 넘기고 나지막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제목 개 세게 가도 돼” 


그래서 고삐 풀고 ‘개 세게’ 뽑은 제목이 바로 [본업도 허술한데…  개혁 성공 ‘물음표’]다. 어떤 큰 조직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기사는 보통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가장 관건인 경우가 많다. 경찰이 개혁을 주창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 본업인 수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경찰처럼 공익을 위해 일하는 조직일수록 자신들의 본분, 본업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게 큰 오명이겠구나, 생각이 미쳤다. 그 생각 그대로 제목을 지었다. ‘본업도 제대로 못하는구나 너희들’


어쩐지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날 지면이 비교적 일찍 완성돼서 동료들 지면을 모니터링하던 중이었다. ‘이번 일주일은 참 기네, 힘든 기분이 일주일을 겨우 끌고 다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번 주말엔 당직이 있으니 당직 끝나고 순댓국을 먹어야겠다는 야심찬 다짐까지 했다. 모니터 위 커서가 ‘본업도 허술한데’ 위에서 깜빡깜빡 거렸다. 


얼마 전에 한 부장에게  “네가 1면 짜는 편집기잔데, 이걸 신경을 안 썼단 말이야?”라는 소리를 들은 게 기억났다. 그 이후로 정말 신경 써야 할 일에 전력 질주할 수 있게 회사 안에서 체력안배를 하려고 하는데 쉽진 않다. 난 본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내 본업은 뭘까. 내가 정말 잘 해야 하는 일이 뭘까. 그게 꼭 회사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외출하다 중요한 걸 잊은 것 같아 가방을 뒤지며 소지품을 확인하는 것 같은 나날들. 그렇게 정신없고 무료한 일상에서 일이 내게 묻는다. 잘 하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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