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6일 수요일 편집자의 일기
직장에서 ‘피하고 싶은’ 윗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나를 하대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납득할만한 이유로, 철저히 ‘일’에 국한해서 비판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그냥 내 기분이 나빠져서 피하고 싶은 거지만 후자는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하다니, 분하다’는 창피한 생각이 들게 만들어서 피하고 싶은 거다.‘논리로 사람을 조지는’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선임이 내게 따로 말을 걸지 않는다면 나는 일을 잘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게 그런 선임 두 분이 있다. 한 명은 1면 출고부서인 정치부에 있는 차장이고, 다른 한 명은 사회부장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날(25일) 바로 이 두 분이 모두 당직인 날이었고, 이 날은 두 분에게 차례로 결정적인 실수를 지적받은 아주 수치스런 날이었다.
정치부에 1면 대장을 드리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차장이 나를 소환했다. 수정되기 전 톱기사 부제 첫 번째 줄이었던 [용인경전철, 일평균 2만명 겨우 이용]에 빨간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거, 제목 되면 안돼.” 단호한 한마디. “너야 기사를 읽었으니까 하루 평균 예측 승객 16만 명 대비해서 2만 명이 적은 수치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썼겠지만 네가 쓴 제목만 읽고 사람들이 2만 명이 적은 숫자라고 생각할까? 나는 아주 많은 숫자로 느껴지는데? 비교 수치가 있어야지. 네가 ‘겨우’라고 쓴 건 아주 주관적인 표현이야.”
너무 맞는 말인지라, 설명을 듣는데 귀가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자리로 돌아와 황급히 제목을 수정했다. [용인경전철 이용객 수요예측 20% 불과]
두 번째 호랑이 선임 사회부장. 그는 절대 본인 입장에서 타부서인 편집부 기자를 호출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내 뒷자리로 걸어와 모니터를 본다. (그게 더 무섭다) 톱기사 부제 충격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뒤에서 사회부장의 묵직한 실루엣이 느껴져 긴장했다. 이어지는 나긋한 목소리. “사진설명 좀 봐봐”
수정되기 전 사진설명은 ‘사진은 25일 오후 승객이 거의 없이 운행되고 있는 용인경전철.’이라는 문장으로 끝났다. “승객이 ‘거의’ 없다… ‘거의’의 기준이 뭐지? 기사에서 ‘거의’라는 말을 쓸 수 있나? 이 사진을 정확히 묘사하자면 ‘한 량에 네 명의 승객이 타고 있다’라고 말해야 할 텐데.” “어머…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요. 사진부장님께 말씀드려볼까요?” “네가 짚어내지 못했으니까, 내가 가지” 사회부장은 그렇게 유유히 사진부장 자리로 향했다. 사무실 건너편으로 ‘거의’라는 단어가 핑퐁처럼 오가며 약한 실랑이가 오가는 게 들렸다. 이윽고 사진설명이 수정됐다. ‘사진은 25일 오후 대부분의 좌석이 텅 빈 채 운행되고 있는 용인경전철’
‘겨우’와‘거의’. 초성도 똑같은 이 두 부사를 퇴근길 내내 끌고 집까지 왔다. 취재기자로 일해보지 않은 게 이런 데서 표가 나는 건지, 한 달이라도 ‘마와리’(취재기자들이 수습기간에 경찰서를 돌며 사건 취재를 하는 것)를 돌아봐야 하는 건지… 생각이 아득하게 미쳤다. 아마도 내 머릿속‘편집기자 사전’이 아직 ‘국문학과 사전’보다 쫀쫀하게 편찬되지 않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