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두 계절이 지나갔다.
남편이 떠난 후, 두번째 계절이다. 그가 떠난 후 첫번째 계절은 겨울이었는데, 많이 아팠다. 해마다 독감은 남편 몫이었고, 나는 늘 남편을 간병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지독하게 독감을 앓았고,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 있었다.
두번째 계절, 봄이 왔다. 피부건조증인지 알러지인지 모르겠지만, 극심한 가려움증과 함께. 주사를 맞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고 나서야 피부는 살짝 진정되는 듯 보였다. 이제 봄마다 이러한 가려움과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삶이 더 지겨워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물을 더 많이 마시기 위해 예쁜 텀블러를 사고, 보습로션도 산다.
살기 위해 노력했던 남편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우며, 나는 또 살기 위해 텀블러와 보습크림을 사는 일. 희망과 두려움, 슬픔과 무기력. 권태와 결심. 쉽사리 정리할 수 없는 마음이 요동친다. 겉으로는 무던해 보이기만 하는 내가 독감을 앓고 지독한 피부건조증을 앓은 이유일 것이다.
2. 깊은 상실과 가벼운 기록
오늘은 꼭 혼자 있을 수 있는 카페를 찾아가 글 하나라도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번 주 내내 봄 이야기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가 돋는 봄이 좋아졌다. 반복되지만 늘 새로운 것들에 의미를 새길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매년 돌아오는 봄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애틋하고 간절하다.
친정엄마까지 모시고 사는 좁은 집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그럴듯한 책상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내 손재주를 아껴주었던 남편이 거실 한 켠에 마련해준 작은 책상(노트북 하나와 다이어리 하나를 펼치면 가득 차는 작은 책상이다.)에서 오늘도 하루의 일기를 끄적이고, 책을 읽고, 사진을 오려붙인다. 글이라도 쓰려고 하면 모여드는 아이들 덕에 아이들과의 수다로 끝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깊은 상실을 견디게 해준 이 작은 책상과 가벼운 기록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날들이다.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대학생이던 시절 학생회에서 대자보를 쓸 일이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남편도 나에게 과행사 대자보를 부탁하며 친해졌고, 그 부탁으로 결혼까지 하게 되었던 기억. 그러고보니 나에게 손글씨를 쓰는 재주란, 기록이란, 인생의 빛나는 순간마다 슬픔의 순간마다 함께 했었던 것 같아 새삼스럽다.
3. 내가 잘하는 것으로 삶을 버텨보기로.
하나의 인연이 가면 또 다른 인연이 오기 마련인가 보다. 어디선가 나를 늘 지지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 연락이 닿고, 안부를 묻는다. 용기내어 먼저 건네는 안부가 고맙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을 만나며 깨닫게 되었다. 하루하루 쌓아나가는 이 가벼운 하루의 기록이 누군에게는 꼭 배워보고 싶은 재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까지 취미로만 생각해 책을 협찬 받아 쓰고, 다이어리를 제공받아 소개해 주는 일 정도로 생각했던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바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취미로만 생각했던 다양한 기록들을 콘텐츠로 만들어 소통할 마음을 먹었다. 나에게 쌓인 기록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보고 싶다. '마음먹기, 작심.' 요즘 나에겐 마음먹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으니, 이 작심만으로도 나는 긴 무기력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이것이 책이 될지, 이야기가 될지, 어쩌다 돈이 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끝은 모르겠으나, 하루하루 정성스럽게 하루를 기록하는 방법은 자신 있으니, 내가 어떻게 버티었는지, 어떻게 슬픔을 이겨냈는지, 사랑하는 이의 흔적을 지우고 또 어떻게 기억했는지, 어떻게 살아내는지, 내 기록을 통해 기억할 것이다.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내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루하루를 다짐하며 살아나가는 내 삶을 기록할 것이다. 의미있는 하루하루를 쌓아올릴 것이다. 이 작심이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고 길잡이가 되면 좋겠다.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 중에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이건 당신의 선물일까.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바람된 당신이 가리켜 주는 인생의 방향이라 믿어본다. 등을 살짝 떠밀어주는 것일지도. 그 운명의 시간을 타고, 이제 나의 이야기를 더 잘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