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님이 Jan 19. 2024

그래도 새해.

  한 해가 갔다. 한 시절이 갔다. 뜨거웠던 대학 시절에 만나 꼬박 8년을 연애하고 결혼해 18년을 함께 생활해왔던 나의 첫사랑. 때로는 학생운동을 했던 동지였고, 때로는 이혼 도장을 찍자며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 했지만, 나에게는 늘 일찍 돌아가신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고, 세 아이에게는 충실한 아빠였던 남편. 그와 공존했던 마지막 해, 2023년이 지나갔다.


  24년 나는 세 아이를 책임지는 세대주가 되었다. 치매 판정을 받은 친정 엄마까지 책임져야 하는 진짜 가장. 도저히 슬픔을 가눌 길 없어 글을 쓰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한 줄도 시작하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그 사람 없이 세아이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음까지 밝게 돌아온 것인지 모르지만 첫째,둘째,셋째까지 각자 자기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쇼핑을 가고, 영화를 보러 나간다. 지난 석 달 동안 이 일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했는데, 아이들이 받아온 학교 생활기록부에 '친구들과 잘 지낸다.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말에 그 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듯 해 기쁘다. 미래를 생각하면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는 일들이 많기에, 그저 현재를 쪼개어 해야할 일들을 촘촘히 정리한다. 신기하게도 그러면 불안함이 조금은 줄어드는 느낌이기도 하다.


  어쨋거나 새해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해맞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소원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빌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무탈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내가 이 가족을 지켜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달라고 빌었다. 당신이 좋은 곳에 갔다면, 그래서 잠시 우리를 내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조금 더 나에게 용기를 달라고.


그래도 새해니까. 빌어보는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