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남편의 삼우제를 지냈으니까 따지고 보면, 이번 주는 아이들과 나만 있는 첫 주말이다. 온전히 통으로 비어있는 첫번째 주말을 어떻게 채워야할 지. 일상인데도 온 힘을 다해 채워야만 하는 이 시간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집에만 있으면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만화책을 읽을 것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서로의 일에 간섭하다가 실랑이를 벌이고, 나의 잔소리에 지루하게 하루를 마감할 것이 뻔하다. 이러면 안되지. 주말엔 어디라도 데리고 나가야지. 아이들에게 화창한 가을 날씨를 느끼게 해주어야지. 아빠라도 그러했을 테니.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화창한 가을날에 우리 곁을 떠나주어서...날씨덕에 애도의 시간을 견딜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침 뉴스를 켜니, 월드컵경기장에서 억새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날씨도 이렇게 화창한데 가족나들이는 어떠냐며 리포터가 말했다. 월드컵경기장이라면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이고, 입장료도 없고, 이미 여러번 가본 곳이라 익숙하고, 화창하고 맑은 날씨를 그대로 만끽하며 걷기만 하는 되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초등학생인 아들들을 유인할 맹꽁이전기차도 수시로 운영한다니 우리를 위해 준비된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분식점 '런던테이블'에서 김밥을 포장했다. 김밥은 늘 5줄을 주문했는데 김밥 4줄을 주문하려는 순간에도 잠시,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이다. 이제 우리는 다섯 식구가 아니라, 네 식구구나. 옆에 바로 붙어 있는 동네 편의점에서 음료와 과자를 사기로 했다. 과자를 살 때는 언제나 그렇듯 신중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다. 내 가방도 아이들 가방도 이제 묵직하다. 출발.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고 가면 50분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는 길은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야만 했다. 김밥과 음료수, 텀블러, 돗자리까지 나눠 들고, 여전히 다리와 손이 불편한 둘째를 챙기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내의 손을 잡고, 틈틈이 첫째를 보면서 버스로 이동하기란 생각보다 힘든 미션이었다. 버스는 더웠고, 주말 버스에 사람들은 많았다. 결국 마음이 급했는지 한 정거장을 미리 내려버리는 바람에 또 한참을 헤맨 후에야 겨우 도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동차로 20분이면 오는 길을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하고 나니, 남편이 타던 차를 빨리 팔아야겠다던 나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일까 싶다.
월드컵경기장 입구에 도착하니, 끝없이 이어진 줄이 보인다. 맹꽁이 전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줄. 대략 난감. 아이들을 달래 줄을 세우고, 오래 기다려야 하니 챙겨온 과자와 김밥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세 놈 모두 김밥과 과자는 돗자리를 깔고 먹어야 한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의견일치의 모습이라 잠시 감동 먹을 뻔.
30분이 흘렀지만, 공원을 한바퀴 돌아 서 있던 줄은 겨우 반만 줄어들었다. 그리고 솜사탕 파는 곳이 보였다. 한 개당 6,000원. 너무 사악한 솜사탕 가격.결국 아이들에게 하나씩 쥐어 준다. 그리고 끝내 한마디를 붙인다. 비싼 솜사탕이니까 떨어뜨리지 말고 먹어야 돼. 안해도 될 말을 꼭 해야 하는 건 친정 엄마을 닮아서일까.
맹꽁이 전기차. 바람은 시원했고, 달리는 속도는 적당했다. 바람을 가르며 사람들 속을 헤치고 가니 1시간 넘게 기다렸던 고단함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맹꽁이 전기차는 생각보다 한참을 달렸다. 맹꽁이 전기차가 스릴 만점이라며 들뜬 목소리로 떠드는 둘째. 시속 20km인데,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이런 걸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거구나라며 형아 누나한테 지지 않으려고 아는 척을 반복하는 막내. 시끄러운 동생들이 그저 부끄럽기만 한 첫째. 길게 이어지는 슬픔과 애도의 시간 속에서도 틈새 사이사이 반짝 빛나는, 충만한 순간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