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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님이 Nov 01. 2023

달라진 주말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저녁은 쌀쌀하지만 낮은 여전히 덥다고 느껴진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10월. 앞으로 나에게 10월의 가을은 젊은 시절 떠난 아빠와 더 젊은 시절에 떠난 남편의 제사를 치뤄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집도 자동차도 남아있는 대출도 남편 앞으로 차곡차곡 쌓여있었던 적금도 우여곡절 끝에 ‘상속‘ 절차를 거의 마쳤다. 거의 마쳤다는 것은 아직 정리해야 할 일을 다 처리하지 못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래도 큰 일들은 거의 해결하고 나니 오랜만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서평을 하기로 한 책이 있어 책을 읽으려고 쇼파에 앉는다. 우리 집에는 거실에 1인용 쇼파가 있다. 원래는 거실 한가운데 3인용 쇼파가 있었지만, 가뜩이나 좁은 집에 쇼파가 거실의 반을 차지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재작년에 처분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햇빛이 가장 잘 비치는 거실 한 켠에 1인용 쇼파 하나는 남겨 두었다. 쇼파는 늘 아이들의 치열한 자리 쟁탈전으로 인해 방석과 등쿠션은 납작해져 푹 꺼진지 오래다. 오늘 이 쇼파를 내가 차지한 것만으로도 행운. 쇼파에 책을 들고 몸을 묻었다가 가을 햇살에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왠일일까. 깨어보니 어찌된 일인지 집안이 조용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첫째는 수학 학원을 갔을 것이다. 끝나고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수학학원을 가면서 그렇게 싱글벙글 가는 모습을 보니, 이미 마음은 수학학원이 아니라 친구들과 영화관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둘째는 축구. 축구 게임에 축구선수 이야기에 그러고도 모잘라 친구들을 불러내서 놀이터에서 축구를 하러 나간다. 동네 친구들과 한창 축구에 빠져 살던 둘째는 다리골절에 손가락골절까지 겪고 나서 축구를 하지 못해 어찌살까 싶었는데, 축구하는 친구들의 심판을 봐주고 있다. 며칠째 혼자 기본기 연습중이라고 했다. 아빠가 축구를 잘하려면 기본기가 충실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축구를 함께 좋아했던 다정했던 아빠와의 추억으로 몸살같은 4학년을 아들이 잘 넘어가주길 바란다.


 막내는 아랫집 친구랑 놀기로 약속했다며, 친구랑 같이 먹을 간식을 간식 창고에서 열심히 챙긴다. 홈런볼과 곰돌이 젤리를 한아름 챙긴 가방이 볼록하다. 2시간 전부터 준비하더니, 30분이나 일찍 집을 나선다. 놀이터에서 기다릴 거라고 했다. 춥고 친구도 없는데 30분이나 일찍 나가면 뭐하니. 집에 있다가 10분 전에 나가라고 하지만, 막내는 싫단다. 간밤에 막내가 나오는 꿈자리가 뒤숭숭해 잔소리가 많아지려는 찰나, 벌써 현관문을 열고 사라져 버린 막내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기다리는 시간도 봄이라는 것.‘


 평상시 같았으면 남편은 딸아이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안방이나 거실에서 자다가 아들들에게 밟힌 적인 몇 번 있었던 남편은 주말에 잠을 잘 때는 딸의 침대에 자곤 했다. 아빠는 안 무서워해도 누나는 무서워하는 아들 둘이 침범하지 않는 방이니까 남편에게는 낮잠을 자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딸 침대의 인형들 속에 자고 있던 남편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더니 서러움이 폭발해버렸다. 딸아이가 책장 위에 세워둔 남편의 생일축하 손편지를 보고 있자니, 마치 곁에 있는 있는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무정한 사람.


 올해도  이제 두 달이 남았다. 올해 초 막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남편과 나는 세 아이 유치원 등하원 15년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이때까지 고생 많았다며, 농담처럼 서로를 축하했었다. 정말 대장정이었다. 세 아이를 낳고 유치원에 보내며 늘 등하원 시간에 맞춰 허둥지둥 달려야 했던 시간들. 예기치 못한 야근이 있는 날에는 친정엄마에게 때로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누구라도 대책을 세워야 했던 시간을 추억하자니, 이리 될 줄 몰랐던 남편이 애틋하고 서럽다.


  주말이면 비싼 여행은 아니여도 늘 우르르 몰려다니던 우리는 이제 각자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잘 견디어내고 있다며 아이들을 칭찬했다. 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겠지. 때로는 많이 슬프고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끝도 모를 두려움을 마주하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더 성장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달라진 주말을 마주하며, 이렇게 또 한 시절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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