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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님이 Oct 13. 2023

사별.

  햇빛이 눈부시던 열흘 전, 23년 10월 2일 가을에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아침에 잘다녀오라며 인사하던 남편은 그 날 오후. 쓰러졌고 돌아오지 못했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응급구조대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에 달려갔지만, 짧은 시간 심폐소생술도 잠시. 심정지로 인한 사망. 남편은 그렇게 마지막 말도 남기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어떻게 흘러갔을까. 장례식과 화장, 발인과 삼우제를 지내고, 떨리는 손으로 사망신고를 하고, 남편의 재산과 채무를 승계하기 위해 상속서비스를 신청하고, 한부모 가정 지원에 대해 알아보며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친정엄마와 세 아이를 데리고 살아가야 하므로  아이들을 추스려 학교에 보내고, 중간고사가 시작된 첫째를 다독여 시험공부를 하게 하고, 세 아이의 식사와 빨래를 챙기고, 친정엄마의 치매검사일을 달력에 옮겨적으며 남은 자가 해야하는 일들을 꾸역꾸역 해나간다.


  20살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날을 떠올린다. 세상에 모든 경험은 다 쓸 데가 있다고 하더니만, 아빠의 죽음을 겪었던 경험마저 남겨진 세 아이를 보살피고,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 큰 경험이 된다.

  엄마는 몇 날 몇 일을 울기만 하더니, 아빠가 남겼던 재산을 모조리 까먹기 시작했는데. 엄마를 챙기던 스무살의 나는 엄마가 울지만 말고 조금 더 씩씩하기를, 나를 챙겨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스무살이었지만,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린 나를 되살려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 나의 세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떠올린다.


  밖에서는 좀 웃고, 집에서는 좀 울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다독일 것. 이것까지가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이다. 그저 세 아이 앞에서 씩씩해져야 한다고 매 시간마다 되뇌여본다. 무슨 주술사의 주문처럼 말이다.

 

  고단했던 현실은 이제 더 고단해질 것이다. 현실은 늘 가혹하니까. 나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도 올 것이며, 보험도 재산도 하나 없이 정말 무소유 정신으로 살다 간 남편이 때로는 한없이 원망스러울 때도 올 것이다. 불현듯 현타가 와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중2,초4,초1. 아직 어리기만 한 세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내 삶이 이제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런 기쁨과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삶 속에서도 삶은 이어가야 하니까. 희망없는 삶을 희망하는 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 남은 사람은 또 남은 몫을 살아야 하니까.


  남편에게 10월 바쁜 일이 끝나면,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사람좋게 웃으며 너무 좋다며,캘리도 배우고, 당신이 하고 싶은 건 꼭 하며 살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이 유언처럼 가슴에 박힐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 고마운 기억으로 남긴다. 여보. 너무 늦어버렸지만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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