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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님이 Jul 11. 2024

노트가 여러 권


  집기장이 책상에 하나, 가방에나 포켓에 하나, 서너 개 된다. 전차에서나 길에서나 소설의 한 단어, 한 구절, 한 사건의 일부분이 될 만한 것이면 모두 적어 둔다. 사진도 소설에 나올 만한 풍경이나 인물이면 오려 둔다.  - 이태준, [무서록] '제재' -


  북에서는 반동작가라는 굴레에 갖혀 사라졌고, 남에서는 한 동안 월북작가라는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잊혀졌던 이태준 선생.  [필사의 기초] 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다가 선생이 평소 글의 소재를 모으기 위해 여러 권의 노트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재미있기도 하고 너무 공감되어서 옮겨 적었다.


   나에게도 여러 권의 노트가 있다. 한 때 로이텀과 몰스킨 노트에 빠져 비싼 노트값을 탓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무인양품 노트가 주는 소박한 느낌이 좋아 애용하고 있다. (물론 가격도 훨씬 착하다.) 외출을 할 때면 가방에 여러 개의 다이어리와 펜을 챙겨 넣는다. 혹시나 약속이 깨지거나 일찍 끝나면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책 한 권도 챙겨 넣는다. 아니, 혹시 모르니 두 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 바로 써야 하니까 노트북도 챙긴다.

  다이어리 신제품을 구경하고 첫 장을 여는 기분이 한 해의 시작이라고 믿는 나는, 40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여전히 다이어리 꾸미기에 진심이다. 남아 있는 생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글을 쓰는 것보다 글씨 쓰는 재미가 더 컸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고, 그래도 한 번 씩 글을 쓰고 발행하고 있다. 매일 아침 책상에 앉지만, 노트북을 켜고 바라보면 하얀 화면은 난생 처음 와 바라보는 드넓은 바다와도 같다. 처음 두 세 개 정도는 그럭저럭 쓸 만 했다. 커다란 인생의 사건이 생긴 날에는 글을 쓰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속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도 그럴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슴 속에 묻어두고 싶은 이야기를 틈틈이 쓰기도 했다. 그렇게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매일 쳇바퀴 돌 듯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이란 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글을 계속 써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쓰려고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무엇을 쓸까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도 하루의 의미를 발견해 글의 소재로 쓰고, 식탁 위에 놓인 간장게장을 보면서도 감동적인 시를 써 나갈 수 있는 작가들은 늘 감탄의 대상이었다. 나의 못남을 조금 견디며 그래도 '나도 언젠가'라는 마음을 조심스레 품으며 세상에 이미 잉태된 수없이 좋은 문장들을 여러 노트에 옮겨 적는다. 이태준 선생도 여러 권의 노트를 가지고 기록하였다고 하니, 나의 이런 기록습관이 틀린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좋아지기도  한다.


  먼 미래를 꿈꾼다는 것이 어느 새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되었다. 예전 한 선배가 힘들고 두려울 땐 그저 딱 하루만 생각하면서 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만 생각하면서 살라고. 그게 뭐라고 그렇게 큰 위로가 되었나. 미래를 그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할 때는, 그저 딱 하루를 다짐하고 살아가기로 하자. 미래가 두려울 때는 그저 현재를 쪼개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 밖에 답이 없다. 별안간 결심했다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수없이 반복하지만,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는 오늘 하루로도 온전히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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