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는 결국은 다른 이의 글을 옮겨 적는 것이다. 온전히 나의 창작물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예쁘게 옮겨 적고, 거기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도 100프로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최종 결과물. 그런데 그 모습이 나와 닮은 것도 같다. 늘 누군가의 주변을 맴돌고, 온전하게 나의 영역을 구축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누구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고 익숙해진 나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30대 어느 날, 빠듯했던 살림에 3만원이 넘는 노트를 처음으로 샀던 날을 기억한다. 만년필이 사고 싶어 교보문고 만년필 매장에 갔다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던 만년필에 40% 할인이라고 찍혔던 가격표도 떠오른다. 17만원의 가격이 당연히 40% 할인되기 전의 정가일 것이라 믿고 좋아했다가, 40% 할인된 최종 가격표였던 사실에 결국 구입하지는 못했지만, 설렜던 기억이다. ‘각인서비스’ 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이름을 새긴 노트를 주문하던 날도 그랬다.
처음에 대한 기억은 늘 그렇듯 조금씩 왜곡되기 마련이라 번거롭고 실망했던 기억들은 사라졌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의 취향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부터 다이어리를 고를 때는 맨처음 종이질이 어떤지 만져본다. 종이질만 마음에 든다면 디자인은 부차적이 된다. 펜과 노트의 미세한 궁합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이가 조금이라도 두껍고 거칠거리면 펜이 종이 속으로 스며들기도 전에 번져 버린다. 종이가 너무 부드럽고 매끄러우면 펜의 잉크가 종이위에서 겉돌아 버라는 경우가 잦다. 지금은 내가 아끼는 펜과 노트를 늘 가까이에 두고 쓰지만, 책상위에는 여전히 손이 영 가지 않는 다양한 펜과 노트로 가득하다. 나와 맞지 않았던 그 수많은 펜과 노트의 선택들을 거쳐 지금의 취향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그저 무의미한 실패는 아니었을 것이다.
취향이 분명해 지면 좋은 재료의 도구들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장인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좋은 재료를 쓰는가에 달려있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는데, 격하게 공감한다. 최고의 요리사일수록 제철에 나온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쓰고, 멀고 먼 원산지에서 가장 좋은 재료를 공수해오고, 몇 년 씩 숙성된 간장,된장을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최고의 가구를 만드는 목수는 최고급의 나무를 고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필사를 위해 가장 좋은 펜과 노트를 구하고 싶은 나의 마음은 필사에 있어서는 나름 최고를 지향하는 나의 자부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사는 결국 남의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