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무언가를 쓸 생각을 하면 언제나 즐겁다. 되돌아보면 쓸 내용이 많아서 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기록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것이든 나의 몸을 거치지 않고 지나치기를 바랄만큼 무기력할 때, 딱 숨만 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귀차니즘에 빠졌을 때, 일기도 다이어리도 더 많이 써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노트에 펜으로 글씨를 끄적이다가, 쓸 이야기가 더이상 없을 때는 언젠가는 읽어야지라며 사 두었던 책을 옮겨 적다가, 그마저도 지겨워지면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렇게 꼬물꼬물 무언가를 조금 하다보면 시간은 늘 쏜살같이 흘러가 있고는 했다.
책임이라고 해봤자 내 몸 하나 제대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다 이던 시절. 밤 늦게까지 술을 먹어도 체력과 시간은 남아 돌고, 열정은 늘 과잉 상태여서 어디에 써야할 지 모르던 그 시절에는 다이어리를 쓰고, 필사를 하는 이 취미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끄적이고 베껴쓰는 취미의 진가는 세 아이를 낳고, 늘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아이들을 픽업하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로 몸과 마음이 허덕일 때 발휘되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고 하면서도 책상에 앉아 일기를 펼치고 다이어리를 펼치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진정되곤 했으니까.
그저 남들도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일기에 온갖 말을 다 쓰고, 다이어리도 여러 개 쓰면서 실행보다 계획짜기를 더 많이 하는 그런 루틴을 말이다. 그러다 내가 기록에 과하게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다이어리를 기록하는 일, 일기를 쓰는 일 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한 투자는 더더욱 아니니까. 그러고보니 나라는 사람은 그런 면에서 ‘기록’과 너무도 닮아 있기도 하다.
쓰고 그리고, 오리고 붙이는 일은 나에게는 무엇을 채우기 보다는 흘러보내는 일과 같았다. 가슴에 맺힌 울분을 담고, 슬픔을 담고, 그리움과 외로움을 담아 흘러보내고 버리고, 개워내는 일에 가까웠다.
스무살. 아빠가 돌아가셔서 막막했을 때에도, 하물며 남편의 명복을 비는 지금도 나는 끄적이고 기록하며 삶을 나아가고 있다. 늘 '열심히 살자' '화이팅' '아자'로 마무리되는 단순하고 뻔한 일상의 기록이지만, 이것이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더 단단해지고 싶은 삶의 다짐이었다고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