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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님이 Aug 01. 2024

글 쓸 용기가 없어 시작한 필사

  펜과 노트만 있으면 좋았다.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기도 하다가 책을 베껴쓰기 시작했다. 좋은 문장이 나오면 책귀퉁이를 접고,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러고 놀았는데, 5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문구류가 더 고급져지고, 필사를 해서 SNS에 올리고 있다는 정도.

SNS에 올리고 있는 필사 한 컷

   필사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돈이 많이 안 든다는 것이다. 펜과 종이, 책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더 큰 장점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서도 가능하고, 도서관에 가서 끄적거려도 되고 동네 조용한 카페를 찾아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필사는 주로 이른 아침에 하고 있다.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둑하고,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민망한 그런 이른 아침에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일기도 쓰고, 할 일도 정리한다. 대개는 쪼개고 쪼개도 나만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날들이 많다. 이른 아침은 삼남매를 돌보면서 나만의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므로, 고육지책이긴 했지만 잘 한 선택이었다. 그러다가 낮에 시간이 좀 되는 날이면 동네 조용한 카페를 찾는다. 너무 조용하지 않으면서 해가 적당히 있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구석진 자리의 카페 몇 곳을 점찍어 두었다. 돈을 아끼고 싶은 그런 날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반나절을 꼼짝없이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유난히 결핍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갔다. 자기계발서도 좋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러했으면 배가 아팠을텐데, 성공담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이야기여서 그런지, 시기질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나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누군가의 꿈같은 성공스토리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책을 옮겨 적다보니 언젠가부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알고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필사를 책을 쓰기 위한 디딤돌이라고도 표현했다. 공감가는 말이다. 글을 쓰고 싶어지니, 좋은 문장을 만나면 어딘가에 꼭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쌓인 보석같은 문장들이 글이 되고, 책이 되고,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것 저것 옮겨 적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해서 글짓기 대회 같은 것은 나가볼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책 읽는 것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였다. 내가 처음 시작한 필사는 그저 글씨를 쓰고 싶어서 한 행위일 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꾸준한 필사 덕분에 글을 쓰고 있으니, 필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글을 쓰게 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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