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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님이 Sep 19. 2024

사는 것, 원래 그런 거겠지.

   지나간 것들은 늘 아쉽다. 며칠 전 딸아이의 첫 걸음마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휘청휘청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도 끝까지 걸어와 아빠 품에 안기는 딸아이의 영상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엄마 아빠가 좋아라 해서 였을까. 겨우 걸음을 떼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이었다.  첫째 아이의 첫 걸음마. 영상 속에는 이제 갓 부모가 된 나의 목소리, 남편의 웃음소리도 있다. 우리는 젊고 싱싱했고 셋이 있어 두려울 것이 없었으니, 떠올리면 눈부시기만 하다.


   남편의 응급실. 이미 의식을 잃은 남편 앞에서 울기만 하고 있는 나에게 의사가 말했다. "남편분은 살아도 뇌사 상태이실 거예요." 때로 단념하고 체념하는 것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직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므로 남편이 하릴없이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어느날은 혼자 생계를 꾸리며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막막할 때도 있다. 세상에 나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로 신세한탄, 팔자타령을 하게 되는 단계가 되면 의사의 말을 떠올린다. 뇌사상태로 누워있는 남편을 일거수일투족 돌보며 살아가야 했다면 나와 아이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나았을까. 남편의 병원비까지 감당하며 간병하며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가능하기나 했을까. 뒷목이 서늘해진다. 


  최선을 다해 살자는 말이 언젠가부터 몸 속으로 가라앉는다. 한 발을 내딛는 마음조차 내기 힘든데, 최선이라니.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고,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 덤덤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예기치 않은 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에 가슴이 툭. 맺힌다. 예전엔 공공장소와 같이 남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자존심에 눈물도 참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진다. 대책이 없던 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눈알이 부풀어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겁이 덜컥 나 안과를 찾으니 눈의 근육이 약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눈의 근육도 쳐지는구나. 처음 알았다. 일종의 눈병 같은 것인데,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나이가 들면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많이 울면 그렇기도 한단다. 많이 울면 눈알도 풍선처럼 부푸는구나. 안과를 다녀온 그 날부터 나는 잘 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눈건강에 나쁘다고 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할 때는 많지만, 예전처럼 속수무책은 아니다. 의지에 의해 멈춘다. 그렇게 참으려고 해도 터져버리던 눈물이, 의사의 한마디에 조절이 된다니. 내가 원래 단순한 것인지. 산다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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