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님이 Jun 10. 2024

글씨를 단정히 써 내는 재능

  나에게는 글씨를 단정하게 써 내는 재주가 있다. 남편이 언젠가 그렇게 말해주었는데,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서 누가 너의 재능이 무엇이니 라고 물으면  ‘글씨를 단정하게 잘 써 내는 것’이라고 답을 하기도  한다. 소소하지만, 이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부터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그건 모르겠다. 대학교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학우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대자보를 매일 쓰면서였을까. 아니면 남들은 하기 싫어 했던 폐강 직전의 펜글씨반 수업 때문이었을까.


  초등학교때의 일이었다. 토요일에도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니까, 좀 오래된 이야기이다. 토요일 3,4 교시에는 CA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정규 수업외 방과후 특별활동 정도 되려나. 30개 정도의 특별활동이 있었고, 그 중에 무조건 하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그때도 수줍음이 많은데다 특별히 잘 하고 싶었던 것도 없었던 터라 나의 선택 기준은 단순했다. 어울려서 하는 것 말고 혼자할 수 있고, 준비물이 요란하지 않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으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2시간을 버틸 수 있는 수업.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은 ‘펜글씨반’.


  펜글씨? 영화에서 봤던 멋진 깃털펜을 가지고 잉크를 찍어가며 글씨를 쓰는 수업일까? 그렇다면 근사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글씨를 쓰며 혼자 2시간을 버티는 일은 지루하겠지만, 그 정도의 지루함은 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친한 친구들에게 함께 하자고 했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이유는 지루해도 너무 지루할 것 같다는 것. 바로 교실로 이동해 친구도 없이 혼자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 첫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 포함 나까지 4명. 선생님은 10권의 펜글씨교본책을 준비해 오셨는데, 너무 많이 남아 버렸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펜글씨반은 깃털펜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다니는 연필로 글씨를 쓰는 것이었고, 펜글씨책은 가,갸,거,겨가 쓰여있는 바둑판 책이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동시도 있었고, 수필도 있었던 것도 같다. 선생님 바로 앞에 앉아, 꼼짝없이 책 위에 열심히 글씨를 따라 쓰는 일. 지루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글씨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낀 최초의 기억이다.


  나의 손글씨를 보고 사람들이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칭찬을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 칭찬을 해주면 나는 아직도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른 채 허둥지둥 하기도 하는데, 글씨로 용돈을 조금 번 적도 있으니 이제 부끄러워 하지만 말고 칭찬에 조금씩 익숙해져 보려 한다. 하지만 역시 힘든 일이다. 나의 이 소소한 재능도 아까운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조언해 주기도 한다. 이런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 돈을 벌 수 있도록 해보라고. 덕분에 지인 찬스를 통해 용돈을 버는 기회도 몇 번은 있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글씨로 돈을 버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다. 캘리그라피가 유행이 되니 사람들은 캘리그라피를 배워보라고 했다. 넌 금방 배울거다. 그걸로 돈을 벌어보라고도 했다. 하지만 캘리그라피 붓펜을 잡는 순간, 캘리그라피는 내가 잘하는 손글씨와는 다른 영역의 세계라는 것을 직감해버렸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붓글씨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 재미가 없으니, 진도도 나가지 못했다. 캘리그라피 붓펜들은 왜 또 그렇게 비싼지. 하나 둘 핑계가 늘어가고, 재료만 잔뜩 사다놓고서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SNS에 내 글씨를 올리고 있다. 처음엔 SNS을 배워보자는 단순한 마음에 계정을 만들었고, 내 눈에는 이뻐 죽겠는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올리기 시작했다. 하늘도 찍어 보고 맛집, 여행한 사진도 올려 보았다. 지금 보면 힘이 잔뜩 들어간 필사 노트, 다이어리도 찍어 올려보았다. 아닌 척 했지만, 자랑하려고 스티커도 비싼 스탬프도 찍어 올렸다. 이때까지 유치하게 보일까봐 숨겨왔던 취향들, 시간이 한가한가봐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드러내지 않았던 나의 취미들을 조심스럽게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봉님작가라고 불러주고, 이 재능이 부럽다고 해 주었다. 또다른 세상이 열린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나만 그런 줄 알고 살아오다가 같은 연도의 다이어리를 몇 개씩 가지고 종류별로 쓰는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는 사실에 용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밖에서 약속이 있는 날보다 스티커와 각종 티켓을 정리하고 꼼지락거리는 것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 옷은 안 사도 문구점은 꼭 들려 신상 문구류를 사와야 기분이 좋은 사람, 종이재질에 민감하고 택배비가 더 많이 나오는 펜이라도 기어이 구입해야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없는 살림에 3만원이 넘는 비싼 노트를 구매하는 일은 허영에 들뜬 사치가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행위였다는 것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