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이겠지만,하던 일은 완성되지 못한 채 하루가 흘러가고, 해야 할 일은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더 쌓여만 가는 느낌이다. 새벽 4시30분에 알람을 맞춰놓는다. 제 때 일어나본 적은 없지만, 알람을 끄기 위해 4시 30분에 눈을 뜨고 손을 뻗어 핸드폰 알람을 끄는 일은 매일 반복중이다. 빠른 시간을 붙잡는 방법은 더 일찍 일어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목표만 주어지면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성과도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부러운 사람들이다. 주어진 역할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사람들. 그들 옆에 있으면서 나는 늘 부러웠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알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보다 하루의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에너지가 딸리면, 마음까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 조금이라도 중요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오늘은 절대 술을 먹지 않고, 사람과 만나는 약속도 최대한 미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삶은 그저 묵묵히 견디는 것임을 깨달아 버렸는데, 그렇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50살을 바라보는 한부모 세자녀의 기초수급자. 이것이 세상이 나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불안한 미래를 끌어안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애처로운지, 또 대견한 일인지.
아침마다 일어나 글을 쓴다. 그래도 나아질 것이라고. 인생이 즐거움이 아니라, 견디어 내야만 했던 이들의 글을 읽는다. 마음이 텅 빈 날은 텅 빈 채로 읽고, 옮겨 쓰고, 끄적인다. 남편에게 쓰는 일기인지 기도문인지 모를 글을 쓰면서, 사랑했던 사람에게만 가능했던 맹세도 한다.
삶을 징징대지 않고, 사랑을 구걸하지도 말고, 돈에 목을 매지도 않으면서 가난해도 우아함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소통한다. 다행히 요즘은 해야할 일들 속에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해내어 내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는 마치고 죽기를 소망해본다.
나에게 글씨를 쓰는 재주,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있으니 괜찮다. 되돌아보면 너무 호들갑을 떨었던 일은 늘 가차없이 실패했다. 보란듯이 말이다. 슬픔 속에서 실패 속에서 다졌던 이 밑천으로 다음 10년을 준비해본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