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접었습니다. 퇴근할 때까지 세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엄마가 길에서 발을 헛디뎌 갑작스럽게 골절 수술을 하셨거든요. 친정 엄마의 도움 없이 유치원, 초등 3학년생 아들을 돌본다는 것, 그것은 더이상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친정엄마의 팔은 제 바람과 달리 너무나 더디게 회복되고, 급기야 부러진 팔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친정 엄마까지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결국 육아와 직장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던 저의 직장 생활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세 아이를 둔 40대 비전문직 엄마가 다니는 직장의 조건이란 늘 그렇고 그러해서 딱히 아쉬울 만한 것도 아니었고, 매일 아침저녁 반복되는 직장 생활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도 컸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그렇게 크고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더 깊은 속내를 털어놓자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둘째 아들 때문이었는데요. 또래보다 말도 느리고 생각도 느려서 놀이치료를 3년이나 받았던 둘째 아이가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야근이 예정되어 있어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당시의 좌절감을 떠올리니, 하루도 결정을 미룰 이유가 없었습니다.
세 아이들은 하루에 다섯 끼 씩 먹어대더니 콩나물 자라듯이 쑥쑥 자라서, 어느새 25평 아파트도 10년 전 자동차도 너무 작아져 버렸습니다. 앞으로 3년은 집과 차를 바꾸기 위해 차곡차곡 시간을 채워나가려고 했는데, 이제 그 야심 찬 계획은 조금 더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좀 더 길게 미뤄야 할지도 모를 일이고요. 생계는 늘 빠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도 육아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끊임없는 갈등의 선택지에서 오히려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마저 드네요.
직장맘의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맘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으니 엄마보다 외할머니 돌봄이 더 익숙했던 삼 남매에게, 손주들을 돌보시느라 고생만 하셨던 친정엄마에게 좀 더 다정하게 집중하는 일상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인생이란 원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40대쯤 되면 알게 됩니다. 그러니 억울해하거나 조급해봤자 별 소용없고, 주어진 일상을 그저 묵묵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요.
글씨를 잘 쓴다는 칭찬을 어릴 때부터 들었습니다. 글씨가 아니라 글을 잘 썼다면 밥 먹고 살기 좀 더 쉬웠을까요. 그래도 "글씨를 참 잘 쓰네"라는 칭찬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저를 다독여주는 응원이 되어 주었습니다. 한없이 내가 못나 보일 때에도, '그래도 글씨 하나는 잘 쓰잖아.'라며 툭툭 털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참으로 큰 행운이었어요.
글씨로 밥벌이를 할 만큼의 재능은 되지 못하지만, 저를 행복하게 했던 그 칭찬들을 떠올리며 이제 SNS로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이어리를 쓰고 스스로 기록 덕후라고 말해 봅니다.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미성숙한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뒤섞인 일상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록하기로 합니다. 시간은 또 빠르고 무심히 흘러갈 테지만 그 과정에서 운 좋게 저의 쓸모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