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 거미집

길을 걷다 만난 생각 2

by 봉림숲

처마 끝 거미집


어둠이 처마 끝에 밀려들면

거미할멈은 긴긴밤 베틀을 돌려

얼기설기 허공을 엮는 음침한 길쌈을 한다


동트면 마당 대빗자루에 쓸려

엉킨 제 실에 감겨 내동댕이쳐져도

무거운 방적돌기를 끌고

고산(高山) 낭떠러지 같은

처마 위로 다시 기어올라 집을 짓는다


곤충들이 날다 횡사하는

황천을 잇는 처마 끝 죽음의 집

수의에 둘둘 말려 걸린 사체 위로

무상한 새벽이슬이 맺혀있다


검은 소복 입고 처마 끝에 선

거미할멈의 초혼(招魂)이 못마땅해

오늘도 집을 나서며

마당 대빗자루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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