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도 좀 부려보자
22년 11월에 쓴 글
필자는 척도 못한다.
아부도 못한다.
그냥 혼자 묵묵히 한다.
알아주면 좋고
몰라줘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한다.
필자의 성향은 이렇다.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있어도
엄청나게 열이 받아도
엄청나게 걱정을 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필자의 그 엄청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쓰고 보니 웃프다.)
올해(2022년) 11월부터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했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같은 성을 가진 두 남자와
하루종일 집에 있는
다른 성을 가진 한 여자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에게 글이 왔다.
두 남자에게 신경 쓸 겨를이
당연히 줄었다.
두 남자 중 키가 더 큰 남자는
글을 쓰는 아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봉우리는 글을 위해
태어나 처음 '척'을 해보았다.
아니 봉우리 안에 있는 그 '엄청나게'를
꺼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첫 번째,
현실과 글에 대한 영감 갖는 시간을 분리
두 번째,
점심, 저녁을 제시간에 풍성하게 준비
(글을 쓰는 것이 가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 번째,
아들과 더 잘 놀아주기
네 번째,
겨우 짬이 날 땐 보란 듯이 책 읽고 쓰기
(더 보여주는 액션)
글쓰기는 나에게 생존이었나?
글을 빼면
내 인생에도 바람이 빠지는 것 같았다.
두 남자를 위해 밥하고 설거지를
하는 여자만 남을 것 같아서
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아니 새벽이니 어제인가?
키가 더 큰 남자가 말했다.
'글을 써봐...'
저번달만 해도
글을 꼭 써야 되냐고
신경질적으로 말해
봉우리를 아주 신경질 나게 만들었는데
와,
엄살 잘 먹히네?
23년 8월에 쓰는 글
엄살을 부리거나 척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질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무의식은 '나도 엄살을 부리고 싶어'
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엄살 부리는 사람을 좋지 않게 보인다면
자신도 엄살을 부리고 싶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 안에 있는 엄살은
간절함 일 수 있다.
그 엄살을 당당하게 꺼내서
보여줘 보자
당당하게 꺼내면 당당해진다.
당신에겐 어떤 엄살이 있나?
11개월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글을 쓰려면 3일 전부터
주제를 선택했다 바꿨다 했다.
글을 쓴다는 부담감으로 하루에 3~4번을
이어서 썼다.
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길이로
써야 하는 줄도 몰랐다.
지금은,
책을 읽다가도,
일상 속에서도,
영감이 떠오르면
30분 정도 안에 글을 쓴다.
(짧은 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실력에 관계없이
꾸준히 해보자
꾸준히 해보기 전에
일단 시작을 해야 한다.
거창한 시작은 거부한다.
소소한 시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