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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Dec 07. 2023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세렌디피티>

씨네아카이브 30. 뉴욕의 겨울을 담은 로맨스 영화

나는 유독 뉴욕의 겨울에 대한 로망이 크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비트 삼아 상점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듣고, 센트럴 파크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록펠러 센터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소원을 빌고, 새해에는 타임스퀘어에서 이브 볼 드롭 카운트다운 행사와 함께 신년을 맞이하는, 화려함과 소박하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겨울 도시는 뉴욕이 유일한 느낌이랄까. 뉴욕의 추위는 우리나라 한파 못지않다지만, 도심 곳곳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장식만 봐도 뉴욕의 겨울은 한없이 따뜻하고 낭만적일 것만 같다. 그래서 선택한 2023년 ‘영화로 떠나는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뉴욕! 겨울의 뉴욕을 담은 달달한 핫초코 같은 로맨스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30. Winter Wonderland in NY (영화로 떠나는 여행 ep.4)" 전문 읽기



<세렌디피티 (Serendipity)>, 피터 첼섬, 2001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세렌디피티>는 존 쿠삭과 케이트 베킨세일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연출한 피터 첼솜이 감독을 맡아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운명적 사랑을 낭만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고조된 뉴욕에서 낯선 이와의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로맨스 영화의 표본을 모두 담고 있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아메리칸 스윗하트>에서 절절한 사랑을 표현했던 존 쿠삭이 <세렌디피티>에서는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조나단 역을 맡아 케이트 베킨세일과 남다른 케미를 보여주었고, 케이트 베킨세일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운명론을 믿는 세라를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케이트 베킨세일이 출연한 영화 중 배우와 가장 잘 어울리면서 매력적으로 보인 작품이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우연’을 뜻하는데 주로 과학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로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실패한 실험 결과에서 예기치 않았던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Luck’ 또는 ‘Chance’와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좋은 결과뿐만 아니라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Serendipity’와는 다르고, 세렌디피티는 좋은 상황일 때만 예외적으로 사용된다. 


(출처: 영화 스틸컷)

달콤한 뉴욕의 크리스마스이브.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고르느라 분주한 한 백화점에서 조나단과 세라는 각자 애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 마지막 남은 장갑을 동시에 잡으며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뉴욕 한가운데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들뜬 크리스마스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잠시 동안 맨해튼에서 로맨틱한 저녁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기 아쉬웠던 조나단은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제안하지만, 평소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세라는 두 사람의 만남을 운명에 맡기자고 말하며 독특한 제안을 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서적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후 헌책방에 팔아 조나단이 그걸 찾게 되면 연락하라고 하고, 자신은 조나단의 연락처가 적힌 5달러 지폐로 솜사탕을 사 먹은 후 그 돈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면 연락하겠다 말하며 헤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조나단과 세라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뉴욕에서의 만남을 잊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두 사람에게 뉴욕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각자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서로를 찾기 위해 뉴욕으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조나단과 세라의 운명적 만남은 어떤 끝을 맺게 될까?


영화는 크리스마스 시즌,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남녀의 우연과 운명 등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떠오른다. 차이가 있다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남녀가 서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랄까. (샘은 새로운 사랑 앞에 주저하지만, 애니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 나선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애니는 “운명이란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인간이 만든 말일뿐”이라며 샘을 찾아 나서지만 <세렌디피티> 속 세라는 조나단과의 재회를 운명의 계시에 맡겨둔 채 기다리기만 한다. 그러나 절친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운명론에 집착하던 세라도 결국에는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은 마침내 하나의 운명으로 완성된다.


영화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낭만을 고취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세상에 완전한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또렷하게 깨닫게 된다. 오히려 운명이란 간절함이 만들어낸 뜻밖의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조나단과 세라 모두 앉아서 운명적 사랑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이는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운명적 사랑이 하늘이 내려주는 ‘destiny’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고자 나아가는 이들에게만 찾아오는 ‘serendipity’인 이유 아닐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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