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프롤로그 10
내가 커피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몇 가지의 이유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오클랜드 시티에서 머물기 위해서다.
시티에 가장 많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카페잡'인데 거기에서도 FOH(front of house) 즉 서빙만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가 커피에 대해서 이만큼 안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커피 세계에 얼레벌레 들어서게 된 거고, 어찌어찌 레벨2 자격증까지 마무리했다.
그리고 앞으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위해서 내가 또 뭘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알바몬답게 한국에서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은 이미 차고 넘쳐서 CV에 쓸 경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일한 경력을 써내봤자 뉴질랜드 사람들이 뭘 보고 나를 뽑아줄까 하는 생각에 전 세계인들이 다 아는 브랜드에서 일한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이 무계획 속에서 계획이 넘쳐나는 부지런한 P의 순간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바로 별다방 코리아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구인난이 심하다는 말이 맞는지 정말 많은 지점에서 연락이 왔고 운이 좋게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지점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부점장님과 면접을 진행했고 좋은 인상을 주었는지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1,800개의 직영점을 운영하는 별다방이어서 그런지 입사 후 교육이 철저했다.
방대한 양의 매뉴얼을 보고 숨이 턱 막혀왔고, 과연 내가 이걸 다 소화해낼 수 있을까 싶어 막막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따라야 할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해 줘서 일을 하면서 혼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게 편리하게 느껴졌다.
물론 상황에 맞게 유도리가 필요했지만, 그 유도리 또한 매뉴얼에 몇 가지 예시가 있기 때문에 그중에 내가 선택하면 됐다.
관리직의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든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서 별다방의 매뉴얼이 한편으로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점마다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평균적인 맛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은 분명 이 매뉴얼때문일 거다.
당시 나는 막 입사한 '새내기'였기에 대처법을 모를 때
'죄송해요. 제가 이제 막 일을 시작해서 잘 모르는데 매니저님 불러드릴게요.'
하면서 책임 전가를 시전하는 무책임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매니저님들에게 배운 내용을 손님들에게 써먹으려고 시도해서 그런지 일 한지 2주 만에 칭찬 글을 받았다.
그 덕분에 한없이 쳐져 가던 나의 어깨는 하늘 끝까지 치솟게 되었다.
칭찬 글을 받기 전에는
'나는 똥멍청이야. 이곳에 나는 맞지 않아.'
라고 생각하며 퇴사하고 싶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는데
그놈의 칭찬 글 하나 때문에
'별다방 조아'
을 외치며 뼈를 묻고 싶어질 뻔했다.
나중에 친구의 지인이 별다방 슈퍼바이저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도 칭찬 글 하나에 희비가 갈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몸소 체험한 경험이었다.
그러니 어디 별다방 갔는데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셨다면 꼬옥 VOC(Voice of customer)
남겨주시기를….칭찬 글 하나 때문에 매일 공포에 떨었던 출근길이 세상 설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직원분들이 불친절하거나 음료 맛이 없었다면 그건 그냥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자동화가 되어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그날의 기분이 조금 섞일 수 있는 거니…. 손님의 입장인 우리가 넓은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주기를 슬쩍 바라봅니다.
그래서 입사 후 일주일 동안은 직원 휴게실에서 계속 교육 영상만 보고 방대한 양의 매뉴얼을 외우다 보니까 별다방의 업무강도가 지독하다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애사심을 가지게 하려는 직원복지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음료 직원 할 35퍼센트가 제법 쏠쏠했다.
당시에 친언니가 내가 일하는 매장을 지나서 출근했을 때라 아침마다 언니에게 벤티 사이즈를 손에 쥐여주면서 오늘 하루도 힘내라고 응원하는 게 내가 일하는 낙이었다.
이렇게 새삼 오래 일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딱 한 달 일하고 퇴사를 했기에 엄지발가락 정도 담가본 정도이다.
그렇지만!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카페잡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예행 연습을 하고 싶다면 별다방에서 일해보는 걸 추천한다.
뉴질랜드에 카페잡과 제법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제 경험의 기준은 전부 뉴질랜드이며. 나라마다 차이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아무리 커피를 잘해도 이곳에 오자마다 바로 바리스타 존에 넣어줄지는 의문이다.
일단 나는 못 들어갔다. 그래서 주문받고 서빙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뉴질랜드는 정말 어디를 가든 한국 별다방 급으로 다양한 옵션과 개개인의 취향 반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옵션이 있어 봐야 시럽 추가, 오트밀크 정도인데 그런 주문을 받다가 여기와서 주문을 받으면 정말 사람의 취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멘붕이 온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양한 옵션의 주문을 받는 연습이 가능한 곳이 별다방이고 신규고객도 많지만 매일 찾아오는 레귤러 고객층 또한 두터운 곳이라 조잘조잘 '스몰토크'도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메뉴얼에 스몰토크를 권장했던 걸로 기억한다)물론 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고 소심한 사람이라 스몰토크를 나눌 용기가 없었는데 종종 부점장님이 단골들이랑 이번 휴가는 어디로 다녀오셨냐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성격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저렇게 조잘조잘 '스몰토크'를 잘하는 게 바리스타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뉴질랜드 카페 기준으로 정말 단골손님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메뉴만 먹는데 괜히 내가 용기 내서 이름 물어본 손님하고 '씨유 투모로우~" 하고 헤어졌더니 다음 날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들어왔다.
커피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보니 괜히 맛이 바뀌어서 단골손님들이 더 이상 안 올까 봐 걱정했던 나를 안심 시켜준 순간이기도 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별다방에서 일한 경험이 실제로 뉴질랜드에서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식기세척기 청소법' ㅋㅋㅋㅋㅋ
여기 와서 식기세척기 청소법을 알려주는데 "나 할 줄 알아!"하고 척척 하는 내 모습에 사장님들이 감탄하셨다.
J처럼 계획을 세우지는 못해도 부지런한 P라 앞으로 닥칠 상황들에 대해서 제법 유쾌하게 잘 극복해 나가고 있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