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2
‘비상계엄’
뉴질랜드에 오고 한국 뉴스를 좀 담쌓고 살아와서 이 대환장 소식을 외국 친구의 연락으로 알게 되었다.
친구가 ‘한국 무슨 일이야?’라는 연락에 ‘왜 한국에 무슨 일 있어?’라는 답장을 보내며 사태파악을 했다.
살면서 역사책에서나 봐왔던 ‘계엄령’이라는 단어를 내가 살아생전 들어볼게 될 줄이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얼마 뒤 뉴질랜드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운 윤석열 탄핵 집회 기사를 봤다.
이제 정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한국이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차근히 변화해오고 있었다는 걸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사진이었다.
누구나 태어날 때 하나씩 물고 태어나는 수저가 있을 것이다.
다이아, 금, 은, 동, 흙 등등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든 내 수저보다는 나을 거 같다는 확신이 있다.
나는 본투비 운동수저다.(뭐 스포츠에 재능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렇게 낭만적인 수저가 아니다.)
내 어릴 적 기억이 시작하는 5살 때부터 정말 많은 집회를 참여해 왔다.
그런데 나는 집회와 시위를 싫어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집회 현장에 갈 때면 혹시나 경찰과 마찰이 생겨서 다치지는 않을지 반대 세력(?)에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지를 걱정했어야 했다.
나는 폭력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참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싫어하고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입에 물고 태어난 수저가 운동수저인지라 꼬박꼬박 모든 집회는 다 참여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는 달랐다.
집회 현장에 폭력은 없고, 모두가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유튜브를 통해서 보고 있으면
엉망진창인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떤 순간보다 희망차다.
그리고 집회에 참여하는 성비와 연령대가 확 낮아진 것을 보니 정말 흥미로웠다.
(갈라 세우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그저 개인의 경험이 그랬기에 적당히 흐린 눈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내 기억 속에 집회 현장에서는 중년 남성 운동가들의 고성과 경찰과의 몸싸움이 난무했다.
물론 언제나 여성 운동가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연령대와 비율로 봤을 때 한참 적고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신문 한 면을 채운 큰 사진 속에 보이는 앳된 얼굴들과 여성들의 비율에 깜짝 놀랐다.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집회 속에
위트 넘치는 깃발들
가장 아끼는 응원봉을 들고 나와서 부르는 ‘다시 만난 세계’
자녀들과 티니핑 요술봉을 들고 나오는 집회에 참여한 부모님들
집회 현장이 이렇게 축제가 될 수 있구나를 어쩌면 저 미친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영영 모르뻔 했다.
세상은 이미 변했다.
이렇게 맑고, 밝고, 웃긴 국민들이 있는 나라가 망하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나라가 어두울 때 울기보다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모두가 희망을 잃고 포기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 혼란한 정세를 정말 위트 있고 평화롭게 풀어나가고 있어 지구 반대편에서 괜히 숟가락 얻고 뿌듯해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한국을 지켜주셔서, 제가 돌아갈 곳을 남겨주셔서.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첫 글로 이 글을 쓰는 것에 글의 흐름과 글의 내용에 대한 부담감에 많은 고민을 했지만 글에는 시의성이 중요하다 생각해 먼저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