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미(2024. 10. 07 초고/2024.10.19)
잠과의 전쟁을 벌이는 날이 많은 영자씨는 늘 피곤하고 졸립다. 낮잠을 자기도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 선잠이 깰 때가 있다. 올해는 유난히 덥고 습한 불볕더위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어 냉방병에 여름 감기까지 겹쳐 고생을 하더니 가을 문턱에서도 차도가 없다.
올봄만 해도 지하철 경로석에 앉으면 나보다 더 젊은 노인들 눈총을 받았다. "젊은것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뻔뻔하게 경로석에 눈 감고 앉자 있네." 부러 큰 소리로 떠들어 소란을 피울 때가 많았다. 귀가 안 들리는 노인들에게 흔한 풍경으로 경로석에서도 주민등록증 확인을 해야 할 지경이다.
아흔 나이에도 흰머리가 없고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어 나이 보다 젊어 보이는 데다 키와 몸집이 작고 허리도 꼿꼿해 누구라도 젊은이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내심 속으로는 몹시 서운하다.
'남들은 젊어 보이려 피부관리에 성형까지 하고 난리를 피우지만 제 나이 안 보이고 젊어 보이는 8게 뭐가 좋다고 그 야단들을 치는지? 남의 속도 모르고.' 일반석에서도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없어 젊은이들 처럼 똑같이 서서 다니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장면을 연출해 냈던 그녀다.
나이가 세 살 많은 친정 일가친척 언니인 숙희 씨와는 가끔 전화로 통화를 하는 사이다. 거동하기 불편해 서로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언니 나는 밤에 통 잠을 못 자요. 예전에 수면제를 써서 잠을 잤는데 먹는 약이 열 가지가 넘어 좋지 않겠다 싶어 끊었더니 밤을 새울 때가 많아요." 영자씨가 푸념했다.
"그러면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다시 먹어 봐. 살 만큼 살았으니, 몸에 안 좋다고 한들 얼마나 안 좋겠어? 괜한 고생 말고 편히 살다 가는 게 잠 못 자고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수년간 영자씨의 묵은 고민거리를 한마디로 잘 정리해 주었다.
처방받은 수면제 덕분에 당분간 잠을 좀 잤다. 얼마 안 가 습관이 된 약이 듣지 않았다. 더는 방법이 없으니 노인들의 만성질환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고민거리는 노인성 변비다. 식사량과 운동량이 줄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늙으면 따라서 장기도 노화되고 쇠약해지기 때문이란다.
남들에게 말 못 할 또 한 가지 고민은 소변을 참지 못하는 요실금이다. 점점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굼떠 화장실까지 걷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속옷을 내리는 동작이 어설퍼 그만 실례를 하고 마는 때가 많아졌다.
그나마 불편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더럽혀진 속옷을 세탁기로 빨 수 있어,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더럽혀진 옷들을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점점 근력도 떨어져 못 걷겠고 중심이 안 잡혀 자꾸 쓰러 지려 하지만 스스로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형편이니 더 이상 엄살을 부릴 데가 없다.
하루해를 어떻게든 혼자 잘 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영자씨의 숙제거리다. 한동안 손주가 깔아 준 핸드폰 고스톱 게임으로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유튜브를 보는 방법을 배워 재미있는 영상을 찾아 볼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중하는 동안은 쓸데없는 잡념과 공상이 생기지 않아 좋다.
사실은 티브이 소리를 최대로 높여도 코앞에서도 잘 안 들리는건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다. 구십 노인에게 핸드폰은 딱 들어맞는 별 천지임이 분명했다.
이렇게라도 자식들 힘들게 않고 도움 없이 혼자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주간 돌봄센터나 요양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자유가 없어 노인들이 질색한다는 말에 가고 가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소변으로 버려진 젖은 속옷과 이불 빨래를 내 손으로 해결 하고 끼니를 스스로 챙기더라도 당분간 내가 사는 이 집을 떠날 일이 없었으면 한다.
오늘도 영자씨는 아들이 사드린 노인 보행 보조기인 '할머니 유모차'를 뽐내며 씩씩하게 운전하며 걷기 운동 하러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