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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미 Oct 22. 2024

독거노인이 뭐 어때서?

사실은 말이야~

구본미(2024. 10. 07 초고/2024.10.19)


잠과의 전쟁을 벌이는 날이 많은 영자씨는 늘 피곤하고 졸립다. 낮잠을 자기도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 선잠이 깰 때가 있다. 올해는 유난히 덥고 습한 불볕더위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어 냉방병에 여름 감기까지 겹쳐 고생을 하더니 가을  문턱에서도 차도가 없다.


 올봄만 해도 지하철 경로석에 앉으면 나보다 더 젊은 노인들 눈총을 받았다. "젊은것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뻔뻔하게 경로석에 눈 감고 앉자 있네." 부러 큰 소리로 떠들어 소란을 피울 때가 많았다. 귀가 안 들리는 노인들에게 흔한 풍경으로 경로석에서도 주민등록증 확인을 해야 할 지경이다.


아흔 나이에도 흰머리가 없고 얼굴에 주름이 별로 없어 나이 보다 젊어 보이는 데다 키와 몸집이 작고 허리도 꼿꼿해 누구라도 젊은이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내심 속으로는 몹시 서운하다.

 '남들은 젊어 보이려 피부관리에 성형까지 하고 난리를 피우지만 제 나이 안 보이고 젊어 보이는 8게 뭐가 좋다고 그 야단들을 치는지? 남의 속도 모르고.' 일반석에서도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없어 젊은이들 처럼 똑같이 서서 다니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장면을 연출해 던 그녀다.


나이가 세 살 많은 친정 일가친척 언니인 숙희 씨와는 가끔 전화로 통화를 하는 사이다. 거동하기 불편해 서로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언니 나는 밤에 통 잠을 못 자요. 예전에 수면제를 써서 잠을 잤는데 먹는 약이 열 가지가 넘어 좋지 않겠다 싶어 끊었더니 밤을 새울 때가 많아요." 영자씨가 푸념했다.


"그러면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다시 먹어 봐. 살 만큼 살았으니, 몸에 안 좋다고 한들 얼마나 안 좋겠어? 괜한 고생 말고 편히 살다 가는 게 잠 못 자고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수년간 영자씨의  묵은 고민거리를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처방받은 수면제 덕분에 당분간 잠을 좀 잤다. 얼마 안 가 습관이 된 약이 듣지 않았다. 더는 방법이 없으니 노인들의 만성질환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고민거리는 노인성 변비다. 식사량과 운동량이 줄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늙으면 따라서 장기도 노화되고 쇠약해지기 때문이란다.


남들에게 말 못 할 또 한 가지 고민은 소변을 참지 못하는 요실금이다. 점점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굼떠 화장실까지 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속옷을 내리는 동작이 어설퍼 그만 실례를 하고 마는 때가 많아졌다.


그나마 불편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더럽혀진 속옷을 세탁기로 빨 수 있어,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더럽혀진 옷들을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점점 근력도 떨어져 못 걷겠고 중심이 안 잡혀 자꾸 쓰러 지려 하지만 스스로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형편이니 더 이상 엄살을 부릴 데가 없다.


하루해를 어떻게든 혼자 잘 보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영자씨의 숙제거리다. 한동안 손주가 깔아 준 핸드폰 고스톱 게임으로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유튜브를 보는 방법을 배워 재미있는 영상을 찾아 볼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중하는 동안은 쓸데없는 잡념과 공상이 생기지 않아 좋다.


사실은 티브이 소리를 최대로 높여도 코앞에서도 잘 안 들리는건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다. 구십 노인에게 핸드폰은 딱 들어맞는 별 천지임이 분명했다.


이렇게라도 자식들 힘들게 않고 도움 없이 혼자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주간 돌봄센터나 요양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자유가 없어 노인들이 질색한다는 말에 가고 가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소변으로 버려진 젖은 속옷과 이불 빨래를 내 손으로 해결 하고 끼니를 스스로 챙기더라도 당분간 내가 사는 이 집을 떠날 일이 없었으면 다.


오늘도 영자씨는 아들이 사드린 노인 보행 보조기인 '할머니 유모차'를 뽐내며 씩씩하게 운전하며 걷기 운동 하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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