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주도에 또 가세요? 국내 다른 곳도 좋고 해외여행도 있는 데 굳이 좋은 계절 놔두고 겨울 제주만 고집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아들이 이해가 안 되는지 묻는다.
2020년 두 달 살이를 시작으로 긴 겨울 여행만 네 번째고 계절마다 짧게 여러 번 다녔으나 질문에 대한 답은 늘 궁색하다.
제주행 비행기 표를 구하면 서울을 잠시 접는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벌써 훨씬 가볍다.
'놀 때는 다른 생각 말고 열심히 놀기만 해야지!'
노는 것도 몇 번이고 속으로 다짐을 해야만 한다.
말이 쉽지, 일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제일 먼저 햇살이 환한 양지 녘에 빨간 애기 동백이 활짝 피어 반기며 미소 짓는다. 그 누가 그리 반겨줄까 싶은 감사함에 얼굴과 마음마저 붉게 물든다.
까만 돌담 너머로 노란 귤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려 있어 꽃보다 예쁘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귤밭이 몹시 반가워 서울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 한다.
귤밭을 찾아가 농장 주인에게 바로 수확한 싱싱한 귤을 넉넉히 사서 실컷 먹는다. 새콤달콤한 귤즙이 입안에서 탱글탱글 터지며 입안이 싱그럽다. 맛도 좋은 데 값이 싸고 흔해서 이리 만만한 과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귤과 함께하는 겨울이 풍성해 즐겁다.
떠나기 전 서울이 영하로 떨어져 추워서 두꺼운 패딩을 입고 왔는데 여기 날씨는 영상을 웃도니 재킷 하나만 입어도 견딜만하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발이 날리는 날에는 체감 온도로 매섭게 추운 날도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한라산 산간 지역에는 눈이 자주 와서 하얀 눈꽃으로 만들어진 상고대를 이루어 기막힌 설경을 만들어 낸다. 설산을 산행하려는 등산객들을 전국 각지에서 불러 모은다. 장비를 갖추지 못했을 때는 비교적 낮은 오름에 오르며 소소한 산행의 즐거움을 누려도 좋다.
12월엔 '방어'가 제철인데 대방어 값이 너무 비싸서 지역 주민들은 비슷하게 생겨 사촌 같은 '부시리'를 선호한다. 초장과 함께 회로 먹으면 비리지 않고 맛이 깔끔하다. 참돔, 고등어, 광어는 회로도 좋고 싱싱한 갈치는 구이와 조림으로 만나도 기막히다.
농사꾼들은 12월이 농번기로 귤도 따야 하고 감자, 당근, 브로콜리, 콜라비, 비트, 양배추, 무 배추 등을 수확한다. 지역에 3, 8일에 열리는 민속 오일장에 주민들이 내다 파는 농산물이 싱싱하고 값싸서 먹거리를 구하고 구경하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화산흙에서 수확한 감자는 팍신하고 당근과 콜라비, 무, 배추는 날로 먹어도 수분이 많아 아삭하고 달큼하다. 특히 제주 돼지고기 삼겹살과 싱싱한 야채의 궁합은 환상이다.
한라산 자락에 한적한 동백숲을 걸으며 이름 모를 야생화를 만나고 노루 가족과 갑작스러운 만날 때 놀랍고 감동으로 절로 환경운동가가 된다. 그들만의 평화를 우리가 빼앗는 것은 아닌지 조심한다.
미국에 유명한 하와이섬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는 제주도가 있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해외여행이 좋겠지만 달러 환율이 1,470원 대가 넘는 물가에 위축되지 않고 저가 항공의 저렴한 비용으로 한 시간이면 입성할 수 있는 제주도가 내 살림에는 잘 맞는다.
음식이 안 맞거나 언어가 안 되는 일이 없으니, 언어와 음식 스트레스가 없다. 지나는 길목마다 만나는 숲과 바다에 예쁜 카페와 지역 주민 맛집들이 마치 보물찾기 놀이처럼 곳곳에 숨어 있어 찾는 재미가 있다.
이런저런 답변을 생각하다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표현이 모자라 말한다.
"일단 시간 내서 비행기 표를 끊고 떠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