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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스 Jan 07. 2022

대낮에 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해요?

책을 매개로 나와 타인을 만나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하지 않는 속 이야기를 하게 돼요."

"취하지 않고도 이런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가슴이 후련해졌어요."


나이, 직업, 가치관, 관심사... 어느 하나 같지 않은 타인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대화를 나눈다. 방금 전 처음 만나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나눈 완벽한 초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이어주는 건 함께 읽은 책 한 권이 전부다. 돌아가며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말하고 나면 서로를 향한 경계가 한결 느슨해진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고, 저마다 굳게 잠근 빗장을 풀고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한다. 아침 10시에. 처음 만난 사람을 상대로. 그것도 맨 정신으로.


어느 쌀쌀한 가을 아침, 멤버들과 ‘죽음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암에 걸린 30 초반 외과의사의 죽기 직전까지 투병기가 담긴 <숨결이 바람  >라는 에세이를 함께 읽었다.


-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죽어가지’ 않고 ‘살아간다’는 태도를 유지하려면 그동안 내 삶 속에서 취했던 행동 중 어떤 행동을 유지해야 할까요?

- 죽음을 앞두고 슬픔이나 두려움이 찾아온다면 그 감정의 알맹이는 무엇일까요?

- 삶의 마지막 순간,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으세요?


일상 속에서 이런 질문에 진지하게 내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해 볼 기회를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 동료에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했다가는 ‘뭐 잘 못 먹은 거 아니냐’는 걱정 어린 물음이 돌아올 수도 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20대~60대까지 세대불문, 다양한 가치관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왔다. 당연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같은 책을 읽고 저마다 다른 감상을 말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낀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독서모임이 끝나면 멤버들의 얼굴은 편안하면서도 상기되어 있다. 책에 기대어 눈치 보지 않고 저마다의 진심을 마음껏 터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가슴속에 맺힌 울분을 토해내며 후련해하기도 한다. 어디에도 말한 적 없는 내 속이야기를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건 귀한 경험이다. 친한 친구와도 속 이야기를 쉽게 하기는 어렵다. 부부 사이에서도 뻘쭘함의 장벽을 넘기 위해 같이 술을 마시고 취기를 핑계 삼아 슬쩍 속마음을 내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체 이 책 한 권이 뭐길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속수무책으로 솔직해지는 걸까?


책은 진지한 대화의 믿음직한 중매자가 되어준다. 책 안에는 여러 가지 생각과 표현이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소통으로 가는 통로를 다양하게 열어주는 덕분이기도 하다.


독서모임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욕구는 근본적으로 ‘내’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다 보면 다수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 생각이라고 믿게 된다. 점점 나의 고유한 빛이 흐려지고 허무함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매개로 나와 타인을 만나는 독서모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지적 유희 활동이 아닌, 나다움을 잃고 싶지 않은 모두를 위한 일상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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