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베카>를 읽으며
아, 진짜 성질 나서 못 읽겠다. 소설 <레베카>! 내 이럴 줄 알았다. 21살의 어린 마님인 '나'는 저택에 가자마자 집안일을 총괄하는 부인에게 무시를 당한다. 모든 하인들이 말끝마다 '돌아가신 마님'은 이렇게 했네, 저렇게 했네...
세상은 내가 조금만 순하고 겸손하면(어리숙하면) 도와주려는 사람보다 무시하고 자기만족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나도 어렸을 때 몰랐기에, 소설 속 주인공의 처신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나'는 이런 불편한 점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게 자기 탓이겠거니 하면서 견디고 자신을 의심한다. 물론 더 읽다 보면 도와주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나'는 점차 어깨를 펴고 마님으로 성장하겠지만.
'나'가 서재에 갔다가 식어 버린 벽난로에 한기를 느끼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성냥을 가지고 온다. 직접 불을 피울 셈이다. 하인을 불러 일을 시키는 것에 익숙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장면을 하인에게 들켰다. 하인은 돌아가신 마님은 아침에 거실을 쓰셨기 때문에 그곳에 불이 피워져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인은 필요하시다면 이곳 서재에 당장 불을 피우겠습니다. 했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나'는 그럴 필요없다면서 거실로 간다고 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성질을 낸다.
"아, 그래! 여기 피워주면 좋겠군요. 나는 앞으로 아침에 서재에서 시간을 보낼 테니, 이곳에 불을 피워 주세요. 거실에는 불을 피울 필요 없어요."
라고 당당히 말할 거야. 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정말 그럴까?" 하며 웃는다.
나는 웃으며, "당신 말이 맞아. 아마 나도 주인공처럼 거실로 간다고 했겠지."
하인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겸손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때문이다. 먼저 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저택을 지키는 길이고, 하인들도 지키는 길인 것을, 나는 쉰이 다 되서야 머리로 깨달았다. 그런데 여전히 행동은 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못할 것 같지만...
주인공 '나'는 이번에는 거실이 어디인지 모른다. 전날 저택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인에게 묻고 안내를 명하지 않는다. 그저 거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척 아무 문이나 열어본다. 하필이면 그게 창고였다.
"아이코!"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답답함에 분통을 터뜨린다. 아마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 한심함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부아가 나긴 나도, 계속 읽게 된다. 주인공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해 주고 싶고, 결국 주인공이 어떻게 잘 살아가게 되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