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베카>를 읽으며
남편은 요즘 체인소맨이라는 애니를 즐겨 본다. 나도 그 애니가 극찬을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기는 싫었다. 제목만 봐도 잔인한 장면이 나올 것 같아서다.
나는 요즘 소설 <레베카>에 빠져 있다. 밥을 먹을 때나 피아노를 칠 때 틈틈히 듣는다. 오늘밤은 전자책을 '읽는' 대신에 이 오디오북을 듣고 자려고 한다.
나는 책이 재미있으면 식사 시간에 남편한테 줄거리를 이야기해 준다.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가는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한테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남편이 묻는다.
"나도 체인소맨 줄거리 이야기해 줄까?"
"싫어."
"핫하하하!"
"막상 이야기하지도 않을 거면서!"
남편은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고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라고 맞장구쳐 주지만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는 그다지 하지 않는다. 왜냐면 남편이 읽는 책은 '헤겔' 뭐시기 이런 하품만 나오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편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하품을 연달아 하곤 한다. 그러니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쨌든 소설 <레베카> 속의 '나'는 어찌어찌 지내는 중이다. 다행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어리숙하진 않았다. 저택의 사람들이 왜 말끝마다 "돌아가신 전 마님은" 이라고 그러는지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지내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러나 늘 다정하게는 대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출장차 런던으로 이틀간 가게 됐을 때, '나'는 약간 해방감을 느낀다. 그날은 (최소한 혼자 있을 때는) 자기자신일 수 있었던 거다. 초원과 바다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정원의 우거진 관목 사이에 낯선 차 한 대가 숨겨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아직 가 보지도 못했던 동쪽 방에 어떤 남자가 창을 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달갑지 않아 하는 살림 총책임자 부인은 '나'를 피해 그 남자를 저택 밖으로 내보내려 한다.
여기서부터 뭔가 미스터리한 느낌이 난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설마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는 전부인, 레베카가 살아 있는 것 아닐까? <제인에어> 속 남편의 전부인이 저택 안에 갇혀 살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좀 진부한 이야기가 될 텐데? 도대체 어떤 흑막이 있는 것일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이야기 속 '나'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주인공의 이름을 모른다. 책의 앞부분에 나온 적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1인칭 시점인 이 소설 속에서 '나'는 그냥 '나'이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드윈터 부인'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남편의 전부인도 '드윈터 부인'이었으니 그만큼 주인공은 이름도 없는 그림자 같은 느낌이다. 언제쯤 '나'의 이름을 알게 될까? 처음에는 '나'의 이름도 '레베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런 소설 속 설정도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