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밤에 관한 추억들
밤을 삶아 먹었다. 밤을 사서 물을 넣고 삶은 다음 도마에 올리고 반으로 자른다. 그다음에 작은 티스푼으로 속을 파먹는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우릴 데리고 산에 가서 작은 산밤을 주워 왔다. 벌레먹은 것도 많았는데, 그래도 식구들이 모여 앉아서 티비를 보면서 밤을 먹을 때 참 좋았다.
알고 보니 남편도 밤을 좋아한다. 산속에 살 때는 집 뒤의 가파른 언덕에 올라가 떨어진 밤을 주웠다. 이미 누군가가 잔뜩 주워간 뒤였어도 남은 것들이 있었다. 줍고 있으면 갑자기 '툭' 하고 새로이 떨어지는 밤송이들이 있었다. 데구르르 아래로 굴러가버리기 전에 발로 딱 막는다.
그러다보면 어디선가 '스르륵' 하는 소리도 들리기 마련이다. 뱀이다. 산속에는 작은 독사가 많이 있다. 나는 겁을 내면서도 겁이 나지 않는다. 나는 뱀보다 훨씬 크다.
밤을 줍다 보면 욕심이 나서 끝을 모르게 마련이다. 나는 주운 밤을 양 바지 주머니에 잔뜩 넣고서는 이제 그만줍고 집에 가자고 한다. 어차피 산밤이라 삶아도 그리 건질 게 많지 않다. 서서히 허리도 아픈 것 같다. 그러면 남편은, "잠깐만 더 줍자." 하며 허리를 구부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 우리집 식구들은 군밤을 좋아하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꼭 군밤 아저씨가 있었고, 나중에는 '단밤'인가 그런 밤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쨌든 집에 가다가 밤을 한 봉지 사서 엄마랑 동생에게 내놓는다. 새삼 그 작은 봉지에 군밤이 얼마 없었을 텐데 셋이 나누어 먹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거의 매일 늦게 들어왔다.
남편과 산속에 있는 문화재를 보러 갔을 때, 길에 깨진밤이 많았다. 떨어졌으나 줍지 않아서 차들이 밟고 간 것인가. 남편이 밤을 줍길래 말했다.
"줍지 마. 우리 거 아니잖아."
"아무도 안 줍는데?"
"그래도 줍지 마. 우리도 우리 대추랑 감 누가 따가면 싫잖아."
"줍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머리를 긁적이다 밤을 내려놓는다.
지금은 밤을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알이 굵은 밤이 망태기 안에 잔뜩 들어있다. 작은 냄비로 한번씩 삶아서는 남편이랑 둘이 식탁에 앉아서 즐겁게 파 먹는다. 벌레먹은 밤은 남편이 먹는다며 내 손에서 빼앗아간다. 아직도 냉장고에 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