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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Sep 20. 2019

아침밥에 대한 단상

가족의 아침 식탁


집에서 살던 19년 동안 거의 아침을 거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침은 조금이라도 꼭 먹어야 한다.'는 생활 철학을 가지고 있던 부모님 때문이었는데 한창 잠이 많던 학생 시절의 나는 아침에 밥을 먹으러 눈을 30분 일찍 떠야 할 때마다 그게 근거 없는 고집 같이 느껴져서 괜히 싫었다.


학교에 가는 날에야 어차피 일어나야 하니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 게 큰 일은 아니었지만 쉬는 날, 그러니까 나와 언니는 학교를 안 가는데 부모님은 출근을 하는 날이라던가 그런 때 마저 꼭 아침을 먹으러 일어나서 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야 했다.


"아침을 먹어야 입 냄새도 안 나고 건강해져. 조금이라도 먹어야 돼."

말은 '조금' 먹으라면서 아침 밥상에는 밥, 국, 반찬, 그리고 과일 샐러드까지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올라왔다. 아침에는 입맛도 없고 밥도 잘 안 넘어가는데 엄마는 과일이나 채소도 먹어줘야 한다며 한 접시를 쌓아 올려놓고는 얼마 뜨지도 않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해서 늘 마지막 잔반 처리는 나와 아빠의 몫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꾸미고 싶은 청소년기의 나는 남은 반찬을 비워야 하는 시간에 고데기로 앞머리라도 한 번 더 손질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왔다. 누가 아침을 먹으라고 보채는 사람도 없었고 과일이며 채소를 챙겨 먹으라고 떠 넣는 사람도 없었다. 자고 싶으면 한두 끼 정도는 거르고 잤고 먹고 싶을 때마다 먹었다. 그렇게 7년을 사는 동안 아침을 챙겨 먹는 때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내려가는 날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 가는 동안에도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우리 집의 오래된 가족 문화 '다 함께 아침 먹는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일찍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을 차렸다. 냉동실에 얼려 둔 잡곡밥 두 개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이 작은 두 공기의 밥이 네 가족의 아침밥일 정도로 이제 우리는 정말 ‘조금’씩만 먹었다. 전날 저녁에 엄마가 끓여 둔 국을 각자의 그릇에 조금씩 담고 밀폐용기에 있는 반찬을 꺼내 반찬 종지에 조금 담았다. 가끔 막내딸의 계란말이 서비스가 올라올 때도 있었고 여전히 엄마는 이번 시즌에 좋다는 과일이나 채소, 요거트 등을 푸짐한 디저트로 식탁에 올렸다.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본 아침 밥상은 실로 성인 남자 1명이 살짝 배부르게 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 정도의 밥과 반찬들을 우리는 오랜 시간 넷이 모여 앉아 먹었다. 물론 점심과 저녁은 훨씬 많은 양을 각자 먹었지만 아침식사의 양은 오랜 시간 그 정도를 지켰다.


그 정도로 조금 먹고 나면 열두 시도 안돼서 또 금방 배가 고파진다. 가끔은 오히려 배가 어중간하게 차서 점심때가 되면 입맛이 없어질 때도 있었다. 어쩌면 부모님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이 아침식사는 아침의 허기를 달래기 위함이나 건강을 챙기기 위함이 그 목적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머리가 커갈수록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는 것은 참 어려웠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네 명이서 꼭 함께 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아침식사를 할 때였다. 아침식사 중에는 텔레비전도 없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간혹 서로가 마음이 상해 서먹할 때에도 꼭 같이 아침을 먹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응어리를 꾹 눌러 담은 채 아침을 먹다가 후식으로 과일을 쓱 내미는 엄마의 무심함에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서울살이 8년 차에 접어든 지금, 일 년째 습관을 들여 아침을 챙겨 먹으려 하고 있다. 물론 혼자 꾸리는 아침상이고 운동을 하기 전 근손실을 막기 위해 먹어야 하는, 순전히 건강을 위한 행위이지만 이상하게 시리얼과 우유, 때로는 과일이라도 깎아 야무지게 씹어 삼키고 집을 나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먹는 행위에 대해 드는 특이한 생각들이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부지런히 먹고 씹고 설거지를 하고 또 다음 끼니를 챙기고 하는 그 과정들이 매우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며 번거로운 일들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짧은 단상이 지나간 후에 결국 식사라는 것은 무언가에 의미를 두고 집중하는 시간이고 그 무엇이 ‘음식’ 또는 ‘함께 하는 순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혼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한 끼라도 내 몸에 들어갈 식사를 위해 신중하게 메뉴를 고르거나 재료를 구매한다.


아침마다 부지런히 밥상을 차리고 둘러앉게 끊임없이 나를 귀찮게 했던 부모님의 정성 덕분일 것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애쓰는 기획자 보니입니다.

저의 취향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남겨보려 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신 뒤 공감과 덧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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