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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Apr 01. 2020

결코 흐려지거나 바래지 않는 시간들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3년 넘게 다니던 첫 회사를 떠나던 날. 매일 가족보다 더 자주 보던 사람들을 꽃이 피는 따뜻한 봄에 떠나려니 괜히 더 아련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에 매일 출퇴근길이 괴롭다 못해 두려울 지경이었다. 누구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열정적으로 몰두해왔다 자부했던 내가 언제 즐거웠고 보람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달고 사는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갔고 희미하게 붙잡고 있던 일에 대한 열정마저 자꾸 손에서 도망치려 했다.


마음을 다잡으려 들여다본 지난 3년의 일기장 속 내 모습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장에 대한 기쁨으로 쉴 새 없이 반짝거리고 있어, 비교하니 더 슬퍼질 뿐이었다. 별일 없이 하루를 보냈음에도 퇴근 후 집에 가는 발걸음은 늘 멍하고 힘이 없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이유 없이 눈물이 툭 떨어지고 그대로 길에 멈춰서서 서럽게 울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며 ‘정말 잠깐 멈춰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만두려고 하는 거야?”

퇴사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되물어온 팀장님의 질문에 구차하게 다른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잃어버린 제 감성을 다시 채우고 싶어요.”라는, 뜬구름 같고 5년차 직장인의 현실감각이라곤 전혀 없지만 그 당시 제일 간절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제가 감성을 다시 찾아야만 하는 이유와 그러지 못해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감에 대해 말로 다 할 수 없어 그날 밤 눈물 그렁그렁한 채로 깨알같이 꼭꼭 눌러쓴 편지를 다음 날 내밀었다.


퇴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길 권유하고 거절하는 실랑이를 일주일 내내 반복해오던 중 내민 그 편지 한 통에 팀장님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사직 처리를 해주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받아보는 큰 액수의 퇴직금을 가지고 혼자 무작정 북유럽으로 떠났다. 휘게(Hygge)의 나라에서 천천히 나를 돌아보며 사소한 순간에서 큰 기쁨을 느끼던 저의 감성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지냈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덴마크 밴드그룹에 속해 있는 보컬이었다. 그의 집에 딸린 작은 방에서 일주일을 묵는 동안 그는 거실에서 매일 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늦게까지 저녁을 먹었다. 그때마다 그는 꼭 방문을 두드려 함께 할 것인지 물어봤는데 처음 이틀은 왠지 무서워서 오후 8시인데도 자는 척을 하거나 피곤한 척을 하며 자리를 피했지만 다음 날엔 용기를 내서 그들의 파티에 함께 했다. 

그 자리에는 덴마크의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건축가 등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는 여행 중인 게스트에게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 싶어 자신의 유명한 친구들을 불러서 자리를 만들어주곤 한다고 했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든 그가 좋아서 한 일이었든 그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다.


덕분에 혼자 여행하던 나는 매일 밤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언어는 다르고 나이는 달라도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는 그냥 친구의 집에 놀러 온 또래의 친구들 같았다. 일주일간 이어진 그 저녁자리는 외국인들과 일을 해야하는 직업 특성상, 유학 한번 다녀온 적 없는 순수 토종 한국인으로써 매번 부딪히던 언어의 장벽과 그 두려움에 관한 것들을 깨준 시간이었다. 눈을 보고 마음을 통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완벽히 잊을 수 있었다.




그의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저녁,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던 중 그는 앨범들이 가득 꽂혀 있는 선반에서 하나를 꺼내 멋드러진 플레이어로 음악을 틀었는데 그때 흘러나오던 음악이 'John Wayne'이었다. 몽환적인 음악과 와인의 취기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탓이었을까. 은빛 머리칼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마흔 두 살의 친구에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더 신경쓰다보니 이제는 진짜로 좋아했던게 무엇인지도 잊어버려가는 것에 대한 두서 없는 독백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글을 쓰고 기록을 할 때 살아 있는 걸 느껴'라는 말에 그는 네가 쓴 글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고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일기장을 내밀자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워했다. 깨알같이 손글씨로 적어 내려 간 일기장에서 그가 해석할 수 있는 글자는 물론 아무것도 없었겠지만 그는 한참이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고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사소한 시간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서는 굉장히 크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취한 탓에 단어가 생각이 안나 바디랭귀지로 표현을 대신하던 상황에서 그가 완벽하게 내 이야기를 이해했을지 알 수 없지만 가슴 속에 있던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을 꺼낸다는 것만으로도 꼬인 속옷 끈처럼 성가시던 생각들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창피하고 비밀스러운 나의 일기장을 공개하는 일. 수많은 생각이 쓰인 비밀의 문을 열어 보이는 일 (물론 해석을 하지 못하니 그럴 수 있었지만) 역시도. 그걸 읽거나 해석할 순 없어도 좋아하는 일이라는 내 말에 그는 신중하게 감상하고 감동해주었고 그 한 권이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먹다 남은 와인과 그날 들었던 LP의 커버



북유럽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내가 살아온 짧은 인생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행복한 시간들 중 하나였다.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원에서 체스를 두던 사람들을 보며 걷던 시간,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앉아 맥주 한잔에 취해 바다를 보던 시간, 알아들을 수 없는 덴마크어로 진행되는 북콘서트에 슬쩍 끼어 알아듣는 척 했던 시간,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배를 타고 노을을 보고 함께 다락방에 앉아 와인에 건포도를 까먹으며 밤새 별을 보던 시간.


여행에서 돌아온 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행의 많은 순간들은 바래지거나 잊혀지게 되지만, 결코 흐릿해지거나 잊히지 않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아마 내게는 그날 밤 묵은 고민들을 두서없이 읊조리던 내 모습과 그런 모습을 마주 보며 경청해주던 낯선 사람의 대화 장면이 코펜하겐에서의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에 흐르던 그 음악과 함께.




에어비앤비에 글렌이 남겨 준 후기



물론 일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만으로 일상의 모든 불평과 괴로움을 떨쳐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길고 긴 인생에서 그 순간들은 스쳐지나갈 정도로 짧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결국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건 결코 흐릿해지지 않는 찰나의 순간들의 기억과 기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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