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과 두려움'
이 두 단어를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이 짧은 두 단어가 유독 새로운 조합처럼 느껴진 순간은 기억이 난다.
'야망' 그리고 '두려움', 두 단어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야망을 가진 자는 두려움이 없을 것 같아서일까?
'야망',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희망'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매번 긍정적으로만 쓰지 않는다. 내 생각에 '희망'을 '욕망'으로 바꾼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알맞게 사용될 것 같다. '야망'있는 사람은 주로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이 많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이 요즘 사회의 모습이다.
"너 야망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말을 들을 때 괜히 머쓱해지는 스스로가 그러한 사회의 시선을 증명해주곤 한다.
나도 꽤 야망가일 때가 있었다. 지금도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세상에 대단한 사람으로 한 획을 그을 거라는 희망(욕망)에 가득 차 있던 때. 그 시기에 마침 원했던 회사에서 인턴 제안이 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클라이언트와의 긴급 단체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회의의 목적은 여전히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팀에 대한 문책이었다. 밤 11시쯤 모두가 피곤에 찌들어있고 예민해져서 우리 팀의 팀장님과 선배들을 다그치는 상황.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친 생각.
어쩌면 이 상황을 구원할 히어로는 내가 아닐까?
한참 경력 있는 선배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사원도 아닌 일주일 된 인턴이 대뜸 아이디어를 던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이걸 꺼내놓지 않으면 인정받을 기회를 놓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속으로는 '내 아이디어 좀 비상한데'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놓은 박인턴의 아이디어는 새벽 한시쯤 채택되었고 그건 곧 우리 팀의 새로운 숙제가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클라이언트가 떠난 뒤 뒷정리를 하는데 팀장님이 먼저 정적을 깼다.
"이야~ 몰랐는데 은영이 꽤 야망 있는 사람이었네."
비록 사회생활 경험은 전무했던 레벨이지만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남은 뒷정리를 나에게 혼자 맡겨두고 자기 물건만 챙겨서 휙 회의실을 나가 버리던 그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것임을. 그리고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꼭 좋은 얘기가 아닐 거라는 것도.
신입 시절 이불 킥 하던 에피소드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가 나오면 이 얘기를 꺼냈다. 신입사원조차 아닌 인턴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냉큼 자기 생각을 얘기해버린 게 선배들 무안 주는 거라 생각한 거 아니면 뭐라고 생각했겠냔 말이야, 하며 그때의 나를 야망에 마음이 앞서 아무것도 안 보이던 애로 비웃으면서.
그땐 몰랐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이 그 회의에서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산 문제, 책임 소재, 소요 시간 등 여러 조건들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야망을 품은 아군이 제대로 터지지도 않을 폭탄을 요란스레 던지고는 뿌듯해하고 있었던 셈이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무식하고 용감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었다. 분명히 두려웠었다.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어쩌면 팀원들을 이 재판장에서 구원할지 모른다는 믿음이 두려움을 조금 앞선 덕분에 겨우 말을 꺼내 얼음장 같던 그 밤의 탁상 위에 던진 것이다.
몇 달 전 홈페이지와 관련된 미팅이 있어 입사한 지 한 달 된 팀원을 데리고 갔다. 그에게는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이라 보고 배우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회의가 길어지고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도중 팀원이 시스템의 구동원리에 대해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팅 내용에 꼭 필요한 내용과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첫 미팅 참석이었음에도 자신감 있게 끼어들어 이야기하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클라이언트도 당황시킨 팀원의 틈새 강의(?)는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이어졌고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그의 표정에는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묻어났다.
"OO님 덕분에 잘 끝났어요." 집에 가는 길에 헤어지는 지하철역에서 던진 말에 "아까 저도 모르게 잘못 말한 게 있어서 당황해서 그때부터 계속 손에 땀났어요."라며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뒤돌아 지하철을 타러 가는 뒷모습은 두려움을 이겨낸 야망가와 같아 보였다.
그러니 누가 감히 야망을 가진 사람을 비웃을 수 있는가? '야망'과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려움'을 품은 채로도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을 말이다. 이제라도 우린 '야망'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사회에서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에서 느껴지는 스테레오 타입이 존재한다. 더 나은 왕국을 만들기 위해 왕이 되고자 하는 재스민에게는 '용기 있는'이 어울리고 왕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파에게는 '야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하지만 기억하자. '야망'있는 재스민도 꽤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