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던지는 추천작은,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도 '오징어 게임'같은 드라마도 아닌 육아 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이다. 올해 초 우연히 한 편을 보고 그날 몰아서 15편을 보며 주말을 꼬박 보냈다. 그 주말은 얼마나 울어댔는지 다음날 아침, 부은 눈 때문에 곱절로 피곤했다.
'애도 없는데 육아 예능이라며 왜 그렇게 열심히 봐?’라고 묻거나 ‘결혼하고 싶어?'라며 미래 계획을 묻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눈물을 참을 수 없으면서도 매주 각오를 하고 챙겨보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들은 아니다. ‘금쪽이’라고 통칭되는 소위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 부모님이 오박사의 카운슬링을 신청한 아이’를 보면, 자꾸 어린 내가 보인다.
사고를 치거나 문제행동을 한 적도 없고 부모님의 속을 애태우지 않았던 딸이었다. 누가 봐도 완벽해 보이는 엄마와 아빠, 쌍둥이 딸들로 이루어진 네 가족. 우리 가족뿐 아니라 친가와 외가 식구들까지 엄청나게 화목했던 성장 환경에서 자란 내가 금쪽이를 보면서 왜 자꾸 눈물을 쏟는지 궁금했다. 유년의 기억 속에는 가족들과 여행을 자주 간 기억, 햇살 좋은 평일 오후에 마루에 종이를 펴놓고 엄마, 언니와 그림을 그리던 기억, 학교에서 미술 과제가 있으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놀이처럼 만들고 그렸던 기억이 가득하고 부모님에게 욕을 들어본 적도 매를 맞아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나는 과거의 순간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코끼리 인형이 아이들에게 속마음을 물어볼 때 어른들은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아이들이 코끼리에게는 줄줄이야기한다. 그런 솔직한 감정을 어쩌면 말하지 못했거나 말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주변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아이,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쉽게 불안을 느끼는 아이, 생각이 너무 많아 걱정이 꼬리를 물고 밤에 잠을 못 자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마침내 코끼리에게 꺼내 보이는 속마음을 들어버렸을 때 나는 어김없이 펑펑 울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확히 본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느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걸 보면서 슬프고 속상한 건 부모의 몫이다. 늘 함께 있으면서 아이의 문제 행동을 보면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오박사님은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부모도, 심지어 아이 자신도 모르는 마음을 발견해낸다. 나는 매번 오박사님이 끄집어내 주시는 아이들의 본마음을 맞닥뜨리는 게 마치 아주 오래 전의 내 마음을 누군가 대신 읽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눈물을 너무 쏟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어도 마음은 개운했다. 마치 옛날의 내가 위로받은 것처럼.
화목한 가정 중에서도 나는 때때로 소외감을 느끼고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린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언니를 따라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관심을 갖는 게 좋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그림 그리는 실력이 남달랐던 언니의 그림은 인기가 좋았다. 어느 날 누워있는 할머니를 언니와 내가 동시에 그렸는데 언니의 그림을 가져가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놀라워하던 아빠와 고모의 발 옆으로 바닥에 그냥 덩그러니 놓여있던 내 그림이 기억이 난다. 엄마는 우리의 그림들을 파일철에 잘 모아놓는 편이었는데 어쩐지 내가 그린 할머니 그림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 날은 언니와 함께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는 언니가 그린 천사 날개 그림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린애가 그 정도의 디테일을 그려내니 신기할 만도 했지만 그 옆에 그려진 내 강아지 그림은 보지 못하신 모양이다. 애써 실망하지 않은 척했지만 그날 새벽 다들 잠든 틈을 타 언니의 그림을 몰래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와 울면서 따라 그려보던 내 모습도 생각난다. 그 순간들을 지금 다시 떠올리면 참을 수 없는 가여움과 속상함이 밀려온다. 그게 뭐라고 그랬을까 싶지만 동갑내기인 언니와 난 늘 경쟁구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가까웠지만 성장기에 그 안에서 완벽하게 편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말 한마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영혼의 라이벌이었던 언니보다 조금 더 잘하는 걸 찾아내어 보여주고자 무던히 애써왔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빠는 나의 롤모델이었다.(그래서인지 mbti도 같다) 젊음을 나태하게 보내는 것을 가장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아빠는 늘 부지런히 열심히 뭔갈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자란 나는 언제나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심심하면 안 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빠는 늘 결과보다 열심히 하는 과정을 더 존중해주고 칭찬해주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결과에 대한 칭찬이 언제나 기대 이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든 지금 왜 그토록 칭찬과 인정이 고팠는지를 떠올려보면, 상장을 받아왔을 때 엄마 아빠가 신나 하는 모습을 항상 보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잘했네~’라며 웃어주시고 주렁주렁 상장을 방에 걸어두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놀라고 기뻐서 까무러치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는 더 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한 그날도 성적표를 가방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엄마 아빠의 놀란 반응을 기대했다. 사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반응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내 기대 이하였던 것 같다. 인생에서 한번 해보기도 힘든 전교 1등을 했는데 갖고 싶던 예쁜 자전거 대신 투박한 성인 자전거를 받았을 때 화장실에서 서러워서 막 울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에게 성적은 자식을 판단하는데 큰 기준이 아니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은 한다. 성적을 잘 받았을 때보다 아빠가 유독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회적 관계에서 리더십을 보이거나 적극적이었을 때였다. 자매 중 조금 더 적극적이었던 내 성격을 아빠는 본인과 닮아서인지 좋아했고 '응답하라 1988’을 볼 땐 ‘덕선이를 보면 완전 우리 딸 같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털털하기보다는 예민한 성격이었다. 예민하고 눈치가 빨라서 분위기를 잘 읽었기에 그 속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총대를 메고 분위기를 띄우려 했던 거였지 결코 쿨하고 털털한 성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는 내 ‘털털한 성격’을 어딜 가든 사람들에게 장점으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예민함과 걱정 따위는 감추고 계속 그런 딸로 지내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주 아팠던 엄마. 맛있게 외식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엄마는 꼭 속이 안 좋아 밤새 게워내곤 했다. 그런 날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무서움을 견디며 아주 먼 훗날 엄마 아빠가 없는 상상을 하며 펑펑 울었다. 그러다 해 뜰 때가 되면 울었던 티는 싹 지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 아빠가 있는 안방 침대에 슬쩍 끼어 눕곤 했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쓰레기 버리러 내려간 사이 베란다를 1분에 한 번씩 내다보며 심각하게 불안해서 동동거리는 금쪽이를 보고 또 어린 내가 겹쳐 보였다. (내 기준에서) 약한 엄마가 어디 가서 다친 건 아닌지하는 걱정 때문이었는지 분리수거하러 간 엄마가 운동이라도 한답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수십 번씩 베란다를 내다보고 현관문만 보다가 옷을 챙겨 입고 엄마를 부르며 밖으로 달려가던 어린 날도 있었다.
내가 보고 안쓰러워하는 금쪽이들의 모습에 과거의 내 모습이 있었다. 시무룩함을 감추고 웃어 보인 뒤에 돌아서서 손톱을 물어뜯던 금쪽이의 뒷모습에 내가 겹쳐 보였다.
성인이 된 나의 불안과 결함들의 원인을 성장기와 가정환경에서만 찾아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런 프로그램을 보며 거울효과처럼 나의 금쪽이 시절도 돌아보게 되면서, 마냥 ‘행복하고 화목했던 성장기’라는 자기 암시에서 약간 벗어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은 없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했던 완벽한 엄마 아빠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어린아이들도 생각보다 예민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였다는 걸 요즘 배워가는 중이다. 미래의 엄마가 되기 위해 배워간다기보다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다독여주기 위해서 영상들을 찾아보고 공부한다. '지금 네 기분이 어떠니~?'하고 부드럽게 물어줄 오박사 님은 안 계셨지만, 마음 깊숙한 곳을 스스로 두드려볼 어른이 된 내가 있다.
"당신이 슬픈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당신이 슬프다고 느껴지면 그건 슬픈 게 맞는 겁니다!"
"제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사람들에게 오박사 님은 늘 이렇게 말해주신다. 내가 슬프면 그건 슬픈 게 맞는 거라니,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왜 우리는 늘 스스로의 감정이 맞는 것인지 의심하며 살아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