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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놀룰루 Oct 16. 2023

나는 나를 잘 몰라서

나를 잘 알기 위한 방법은 나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몰랐다. 30년 인생 살면서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4년 근무한 회사를 나와 공백의 시간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며칠을 내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나 충실히 회사 김 00 사원이란 타이틀로 살아왔던 탓이었다. 


누구나 퇴사를 하고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유독 허무함을 크게 느꼈다. 

회사에 애정이 가득했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스타트업 기업에 초창기 멤버로 들어가 으쌰으쌰 힘을 다해 회사를 키워 나갔기 때문이다. 

야근과 주말 근무는 기본이었고 밥 먹을 시간을 아끼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끼니를 때우기도, 그마저도 거르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한쪽으로 애정과 욕심이 쏠릴수록 다른 쪽에 있는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희미한 '나'란 존재를 다시 그려내기 위해 도망치듯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하얀 백지에 온전히 나의 모습을 담은 형태와 색을 입히기엔 낯선 환경에 던져 놓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아낸다는 것이 물론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나'였다. 

무수한 자의식,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한 프레임이 나란 존재를 계속해서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을 깨버리기 위해 평소 나라면 안 할 법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여행을 하며 많은 것들을 도전했는데 그중 나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건 내 인생 처음 도전한 물놀이, '스노클링'였다. 


나는 바다 그리고 물놀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두 명의 친구가 물놀이로 세상을 떠난 후 나는 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핑계로 바다는 매번 피해 왔다. 바닷물에 몸을 푹 담가본 일은 평생 손꼽을 정도다.  

처음 바다에 들어가 발을 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바닷물에 몸을 온전히 맡기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물이 귀와 코로 내 모든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느낌이 싫었다. 나를 수면 아래로 빨아드릴 것 같아 무서웠다.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내가 잡고 있으니 걱정 말고 힘을 빼 봐요'


스노클링을 알려주는 분의 말에 걱정의 생각은 잠시 잊고 온몸에 힘을 빼려고 노력하자 바닷물에 기대 발을 떼고 둥둥 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바다에 떠서 되지도 않는 발장구를 치며 수경 너머로 보이는 물고기들과 바다 깊은 곳을 구경했을 때가 생생하다. 그때 나는 바닷속은 이렇게 생겼구나, 물고기는 이렇게 헤엄치는구나 하며 어린아이처럼 처음 보는 세계를 신기해하며 구경했다.

즐겁게 즐긴 적이 없으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물이 무섭고 어려웠던 이유는 그저 해본 적이 상상 속에 대한 공포만 키워왔기 때문이었다. 


바다를 즐긴 경험은 나에게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여전히 물이 무섭고 수영은 못하지만 바다를 만나면 언제든 반갑게 뛰어드는 일을 사랑한다. 

내가 만약 그때 스노클링을 도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다. 


그 후로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대상이 있다면 곰곰이 생각한다. 해보긴 했어? 

대답은 대부분 no로 끝이 난다. 그러니 낯섦에 몸을 던져 일단 시도해보기로 한다. 


아. 그래서 그 여행을 통해 결국 나를 발견했냐고? 

여전히 낯섦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나를 만나는 중이다. 매번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통해 만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국 이 낯섦이 주는 매력에 계속해서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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