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반행의 삶의 시작
어김없이 마감에 시달리다 지하철 막차시간에 어쩔 수 없이 겨우겨우 퇴근하는 길
나에게 달려오는 차 한 대에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는 내 옆으로,
아무렇지 않게 쌩 지나치는 행인에 고개를 돌려 다시 그 차를 쳐다보니
내 눈앞에는 시동도 꺼진 채 멈춰 있는 차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너 그거 공황장애야'
이미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듯 말하니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꼭 병원에 가보라며 신신당부하는 친구의 말에
병원으로 향하는 대신, 서른이 되는 그 해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한 달 만 다녀오리라 다짐했던 여행이 2년 반이나 되었던 건
여행을 통해, 다양하게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가득한 사람이었다는 걸 여행을 통해 알았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각자의 나이대에 살아가야 하는 모습, 응당 그래야만 하는 관념적인 삶의 이미지는 그곳에선 하나의 형태일 뿐이었다.
나도 내가 가진 관념을 넓히려 노력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용기도 피어올랐다.
하. 지. 만
긴 여행이 지속되면서 통장은 어느새 텅텅 비어가기 시작하더니 금세 잔고는 바닥을 찍었다.
더 이상 여행을 지속할 수 없던 나는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여행경비를 벌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반노 반행의 삶, 여행이라는 이름의 내 삶을 찾아가는 방황이 시작된 지 벌써 5년 차가 되었다.
반노반행
말 그대로 일 년의 반은 일을 하고 반은 긴 여행을 떠나는 삶이다.
매년 긴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구하고 일을 하는 반여행인, 반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여행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가볍게 돈을 벌 어 보기도 하고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아보리라 다짐도 해 보면서
계속해서 일하고, 여행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물론 이 삶이 지속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답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여행을 하고 여행경비를 벌기 위한 노동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분명 여행과 노동에 대한 경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순간을 위해 지금의 내 삶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