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하고 싶어서 돈을 벌었다.
여행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여행을 했지만, 결국 일과 돈에선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돌이켜 보니 무모했던, 5년을 여행하며 선택해 온 나의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여행을 하면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스텝일이었다.
제주를 여행하다가 돈이 떨어지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스텝 일자리에 지원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비교적 쉽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총 세 번, 게스트 하우스와 서핑샵 스텝일을 했다. 한 달에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100만 원까지 벌었다. 서핑샵은 근무시간과 일의 강도가 다소 높은 편이지만 무료로 서핑을 배울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일이었기 때문에 급여가 작을수록 여유 시간을 길게 보낼 수 있었다. 휴무날은 여행을 떠나거나 숙소 근처를 산책을 하며 사색을 즐겼다.
스텝일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제주의 풍경 속 일부가 되어 일상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숙식제공과 노동을 맞바꾸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 노동의 대가는 충분히 제공받을 수 없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두 번째, 여행을 하며 일을 하는 프리랜서 일이었다.
거제 살이를 함께하는 친구들 중에 몇몇이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데, 그게 멋지고 부러워 보였다. 그래서 전 직장 대리님께 전화해서 '저 일 좀 주시죠?!'라고 당당히 외치며 일을 따냈다.
넓게 펼쳐진 바닷가, 서늘한 바람이 부는 숲 속, 예쁜 카페 그 어디든 나의 일터가 될 수 있다. 기간 안에만 잘 마무리 짓는다면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제일 힘들어하던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9-6의 긴 시간을 사무실에 박혀 있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일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찰떡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딱 하나에 집중하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일도 여행도 충분히 즐기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하자. 나의 경우 일할 땐 놀생각, 놀 땐 일할 생각에 삶이 피폐해지는 바람에 길게 지속하진 못했다.
다만 지속적으로 일과 여행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면 노하우가 생겨 괜찮아질 테니 지레 겁먹을 건 없다.
세 번째, 뛰쳐나온 전 직장을 다시 두 발로 들어갔다.
여행 3년 차, 코로나로 비행길이 막혀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 여행을 하던 중 나의 통장은 잔고 0원을 찍었다. 마침 우연히 제주에서 전 직장의 대표님을 만났다. 그리곤 몇 개월만 같이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일을 구해야 하는 불편함 없이 기간제로 재 입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여행을 멈춰야 했지만 익숙한 곳에서 편한 사람들과 일할 수 있고, 입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운이 좋은 사례였지만 지속적으로 회사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면 이런 기회는 언제든 잡을 수 있다. 이 이 후로도 함께 일을 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네 번째, 서울시에서 하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일을 해보니 여행을 잠시 멈추고 서울로 돌아와 일상의 루틴을 즐기는 방식도 나와 잘 맞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일을 다시 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지인을 통해 일자리가 들어왔지만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들어오는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수많은 기대와 좌절을 겪는다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 년 이상 일할 수 없는 고집스러운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커리어는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원래 하던 파트의 일을 구해봤지만 서른이 넘고 경력도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는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서울시에서 하는 일자리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비교적 쉽게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최대 6개월 정도의 인턴 형태로 일을 할 수 있고, 연장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울시와 계약을 하고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근무자를 보호해 주는 제도가 보장되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만약 지원서를 넣어도 계속 떨어진다면 지자체 또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알아보자.
내가 여행을 하면서 일을 해온 형태는 모두 조직 안으로 들어가 일을 하며, 작든 크든 월급을 받는 비교적 평범한 방식이다.
이 밖에도 조직에 들어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무자본 창업이나 블로그, sns등을 키워 광고로 돈을 버는 방법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여행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저 우린 스스로의 일과 삶의 방식을 들여다 보고 나에게 맞는 일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너무 많아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추천하는 방법은 다양한 일을 우선 시도해 보는 것이다.
아니, 일단 여행을 떠나자! 방법은 많고 굶어 죽진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