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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놀룰루 Oct 19. 2023

여행자의 흔한 소비법

짠내 나는 삶을 애정할 수 있게 된 이유


반노반행의 삶을 선택하니 짠내 나는 주머니 사정이 함께 따라왔다.

일 년의 반만 일해서 번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일 년 내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행자금까지 고려하면 숨이 턱 막힐 정도다. 아무리 아끼는 것이 익숙한 모태 짠순이인 나지만 아끼고 아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삶을 산다는 건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 나름대로의 방법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엄격한 소비 기준을 세우고 소비에 대한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루믹스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내 공간의 오래된 사물들

그 기준은 바로 소비할 사물의 본질이다.

나는 소비를 하기 전 가능하면 물건의 ‘본질’을 생각한다.

무언가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언제나 물건의 ‘상’, 소유로 인해 갖는 이미지가 마음 한편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걸 갖게 되면 00해 질 거야'라는 이상이다.

대부분의 광고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이 소유로 인해 얻게 되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많은 아파트 광고가 화려하고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고, 많은 테크 기기는 편리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도 인기 있고 화려한 연예인을 앞세워 광고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 소비는 대부분 이런 이미지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지만 불필요하게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마음뒤에 숨은 ‘상’을 들여다 보며 잠시 소비를 보류한다. 그 마음이 가라앉을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다.  충분히 그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다시 소유하고 싶은 물건의 본질과 필요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물건의 본질과 필요에 맞지 않고 오롯이 물건을 소유할 때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다면 깔끔하게 장바구니에서 지워 버린다.

반대로 소유하려는 목적이 물건의 본질과 맞다면 그제야 '취향을 가득 반영한 소비'를 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소유하고 싶은 물건 중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전자기기는 가능한 오래오래 사용하는 편이다.

나의 노트북은 아직 맥북 2012 버전이다. 사과 로고에 불이 들어오는 데다가 CD롬까지 있는 희귀템이라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다.

핸드폰은 갤럭시 노트 9를 쓰고 있다. 작년까지 노트5를 썼는데 항상 수혈하듯 보조 배터리를 연결해서 다니는 나를 보고 친구가 자신이 쓰던 핸드폰을 내어준 것이다.

최신의 전자기기와 비교하면 조금 느리고 불편하긴 하지만 기특하게도 각자가 가진 본질과 목적은 충실히 해나가기 때문에 아직 바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이 밖에도 많은 소비의 대상은 나의 기준에 따라 여부가 결정된다.


그렇다. 이 장황하고 긴 글은 짠내 나는 주머니 사정과 짠내 나는 소비에 대한 변명이다.

변명이라고 급히 둘러 대는 이유는 굳이 그렇게 까지 하면서 살 필요가 있냐며 나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변명을 더 이야기 해보자.



수첩은 이면지와 재생지를 이용해 만들어서 쓴다.


' 돈이 없는 건 슬픈 게 아니라 불편한 거예요'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 뉴 논스톱으로 인기를 끈 김민식 pd 님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소비하지 않으면 소유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돈으로 쉽게 해결해 왔던 것을 내가 직접 고민하고 해결해 가기 때문이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가까운 거리는 걷는 다던가, 옷에 소비를 줄이기 위해 유행이 지난 옷을 수선해 입는 등의 노력이다.

나는 돈을 아끼는 노력을 통해서 소비하면 쉽게 누리지 못했을 과정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김민식 pd님 말에 하나 덧붙여 본다면

' 돈이 없는 건 불편한 게 아니라 과정 즐기는 일이에요 '


돈이 없다고 아껴야 한다고 슬퍼하지 말자. 불편하다고 투덜 대지도 말자.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그 속에서 과정의 즐거움을 발견하자.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이 삶에 감사함이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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